잘 멈춰 섰고, 다시 잘 달려보기를
지난 7개월간의 실험을 종료했다. 이 시간을 정리해 보면, 정체성을 회복한 시간, 그리고 바뀐 정체성에 맞게 기준을 재정비한 시간이었다. 다시 내 일상을 보면, 낮에는 마케터로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모습으로 예전과 같아 보이지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명확해졌다.
멈춤을 기준으로, 내 커리어의 phase가 나뉘었다.
phase 1.
일을 처음 시작한 14년부터 24년까지는 마케터로 달려가는 시기였다. ‘성장’이라는 업 가치관에 맞춰 내게 필요한 조각들을 찾아가던 시기였다. ‘어제의 나보다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따라, 내게 맞는 인더스트리/PLC (product life cycle)/ 조직문화 등을 정의해 나갔고, goal이 있다면 언젠가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 후로 두 가지 갈래 - 사업하고 싶다, 글 쓰고 싶다-처럼 닮은 듯 전혀 다른 두 가지 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었다. 그러다 말만 하는 것도 지겹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글쓰기를 선택했었다. 당시에는 두 개의 길 모두 갈망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여서 그걸 선택했을 뿐인데, 그 선택이 나를 phase2로 데려다 놓았다.
phase 2.
Phase2의 시작 계기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 당시 내가 겪고 있던 3가지 변화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회사에서는 단기 지표를 보느라 지쳐버렸다는 것, 몇 년간 해온 글쓰기가 특정 임계치를 넘었다는 것, 아이 엄마가 되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 이런 변화들로 가치관이 재정비되었다.
회사 일은 당장의 숫자 개선에 집중해야 했는데, 단기 지표를 올리기 위해 싸우고 있자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렇게 성장해서 so what?’이라는 질문, 예전의 내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던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마케터로서는 ‘의미’라는 업 가치관이 추가되었다. 그간 성장이라는 업 가치관에 맞는 기준들만 있던 터라, 새롭게 추가된 의미라는 가치관에 맞는 기준이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글 쓰는 내가 커지기 시작했다. 20년부터 시작한 글쓰기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일하면서 틈틈이 기록했던 글들은 2권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24년부터는 에세이로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생겨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임계치를 넘자 글로 돈을 벌든 못 벌든 상관없이 내 정체성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사 생활과 육아와 병행하느라 잠을 줄여 매일 1시간씩 글을 쓰고 있음에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글만 진득하게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새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괴로운 것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goal이 바뀌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작품 하나 쓰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낮에는 회사 일로 괴로워하고 밤에는 나를 위로하는 글을 쓰는 것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사생활을 잠시 멈추고서, 7개월 동안 실컷 글을 썼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게 맞는 기준들을 정리했다.
1. 정체성의 회복 - 글 쓰는 자아를 인정했다.
- 먼저 글 쓰는 자아를 인정했다. 직업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이제는 ‘글 쓰는 마케터’로 설명하기에는 임계점을 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제는 ‘작가이면서 마케터’라고 생각했고, 작가라는 말이 앞에 나올 만큼 글 쓰는 내가 중요해졌다.
- 멈추고서 정말 실컷 글을 썼고, 이렇게 쓰고 나면 충분히 썼다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더 쓰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쉬운 걸 보면 글 쓰는 자아는 계속해서 나의 가장 주요한 자아가 될 것 같다.
-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인데, 글로 돈을 벌어야 하면 돈에 지는 선택을 하고 말 것 같아서, 글 쓰는 나를 지키기 위해 마케터 자아가 돈을 열심히 벌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2. 정체성의 회복 - 그럼에도 마케터가 중요했다.
- 또 다르게, 글 쓰는 내가 그렇게 중요하면 아르바이트처럼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지만, 내가 다능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마케터로서의 나와 작가로서의 내가 서로 균형을 맞출 때 내가 나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잠시 일과 거리를 두면서 마케터로 다시 일할 에너지가 생겼고, 내 강점을 정확히 이해했다. 나는 마케팅에 지쳤던 게 아니라 그로스마케팅을 하느라 지쳤던 것이라고 정리했다. 나라는 사람은 브랜드 마케팅/그로스 마케팅 반반인 사람이고, 특히 브랜드의 지향점을 기반으로 두고 이를 숫자로 만드는 것에 강점이 있다. 그래서 이제 직무는 브랜드 마케터로 두고, 그로스마케팅적인 사고를 가지고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건 따로 글을 써보기로)
- 그래서 글 쓰는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내가 또 다르게 즐겁게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 마케팅이라고 정리했다.
3. 무엇이 중요한지 명확히 알게 된 것 - 정체성에 맞는 기준 재정비
- '의미'라는 가치관에 맞는 기준을 정비하면서, 어떤 인더스트리로 가야 하나 고민했었다. 내 스스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질문이 들지 않는 영역은 나를 더 나답게 살게 하고 돌보는, 일상 비타민 영역 (0을 +로 만드는 것) 영역이었다. 그래서 의미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런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에 연봉을 깎고서라도 들어가 볼 만도 한데 그런 선택을 못하는 나를 보면서 또 한 번 내가 다능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마케터인 나만 있었다면 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의 나가 서로 맞닿아 균형을 맞출 때 내가 나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나는 인더스트리가 중요하다기보다, 마케팅이든 글이든 현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 매일 겪는 일상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깨달음으로 가닿았다. 일상을 다르게 보고 의미를 찾아내는 것. 마케팅이면 내가 마케팅하는 브랜드가 고객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을 쓸 때는 이 경험들에서 얻어낸 것들- 일을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는지 등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글들이 무엇을 향하는가 봤더니 모두 ‘나답게 일하고 살기’라는 키워드에 가있었다.
- 그러면서 나답게 일하고 살기는 내가 쓰는 글의 결괏값이라는 게 명확해서, 글이 ‘주’고 나답게 일하고 살기가 ‘부, 결과물’이어서, 나답게 일하고 살기와 관련된 일을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고, 내 강점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글쓰기에 집중하자고 정리했다.
- 그럼에도 새로운 회사를 찾기는 해야 했는데, 새로운 나에 맞는 기준이 하나도 없으니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식은 일단 다 만나본다였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다 싶으면 인스타 DM, 콜드메일을 보내고, 커피챗이든 면접이든 일단 다 진행해 보고 내가 ‘재밌겠다,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진행한다, 그렇지 않으면 드랍한다. 그냥 몸으로 부딪히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내 기준에 맞는 ‘단 하나’라는 느낌이 드는 옵션은 없을 터라, 그냥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들지 않는/적어도 재미를 느끼는 걸 선택하자였다. 그래서 선택한 지금 회사는 똑같이 빡세 보이지만, 나다운 일과 삶을 이야기하고, 브랜드 마케팅을 하다 보니 내 질문의 방향이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이냐'처럼 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이라 천천히 적응 중에 있다.
오래 순수하게 내가 바란 것
김화진 님의 <개구리가 되고 싶어>를 읽다 ‘오래 순수하게 내가 바란 것’이라는 말에 멈춰 섰다. 글쓰기가 내 정체성이 된, 임계점을 넘은 순간은 언제일까? 내가 순수하게 바라는 것이 바뀐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전에 내가 바라던 것들은 '마케터가 되고 싶다', '내 사업하고 싶다'였는데 어느 순간 ‘와 저런 작품 하나 쓰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 ‘저 작가 너무 부럽다.’처럼 작가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것. 그때가 임계점이 넘은 순간이구나 했다.
여담이지만 P&G 다닐 때부터 마케팅 일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순수하게 바랬는데, 그때 회사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누가 읽겠냐고 놀렸던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몇 년 뒤에 책을 냈고, 도움이 되었다며 인사 주시는 독자님들도 계시니, 오래 순수하게 바란 것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믿으려 한다. 이제는 소설을 쓰고 싶고 (이미 쓰고 있고) 이제는 쓰고 싶은 것들이 오래 순수하게 내가 바란 것이니 언젠가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 번쯤 꼭 필요했던 멈춤
이 기간을 돌이켜보면 내 스스로 결단을 내린 한 해, 멈춤으로써 나를 지킨 한 해였다. 이때 멈추지 않았더라면 작년 하반기동안 써낸 글들이 내 안에서 썩거나 날아가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정체성으로 이미 자리 잡은 글쓰기를 못내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적어도 5년간 바라보고 나아갈 나침반을 만든 시기였다. 새로운 지향점 하에 마케터로서의 나, 작가로서의 나를 이해했고, 그 둘의 균형도 정확히 이해했다. 이제 내 과제는 마케터로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글 쓰는 나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 이제 그 글들 위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뿌리를 단단히 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