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얻은 문장 하나.
일을 쉬면서 7개월간 글을 썼고 (마지막 2개월은 커피챗과 면접으로 거의 쓰지 못했지만), 이번 주부터 일을 시작했다. 일을 다시 찾으면서 내가 갖고 있던 질문은 ‘글 쓸 틈이 있는 회사로 가야 하는지’였다. 앞으로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동안 전속력으로 달리는 회사만 다녔던 터라 글과 일이라는 게 도대체 병행이 가능한지, 그래서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워라밸이 갖춰지는 회사로 가서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가 내 고민이었다. (그런 회사를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 1월 말쯤에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을 만났다. 하나는 인티그레이션 대표님과의 커피챗에서, 또 하나는 문유석 님의 <나로 살 결심>이라는 책에서 찾았다.
글을 너무 빨리 돈으로 환산하지 않길
1월부터 많은 분들과 커피챗을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인티그레이션 대표인 희범 님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를 정확히 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희범 님은 일을 하면서 얻은 것들을 블로그에 쓰는데, 글 쓰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이야기가 흘러 흘러 어쩌다 나의 고민까지 가닿았다. ‘글 쓸 틈이 있는 회사로 가야 하는가’라는 내 고민에, 이미 내가 쓴 글들을 읽어보셨다며 ‘너는 인생을 먼저 살아내고 거기에 대해 글을 쓰는 스타일 같던데, 글을 돈으로 치환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 역시 명확히 알고 있던 것은, 내가 그동안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면 그건 어쩌면 괴롭기까지 했던, 밀도 있는 시간들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글로 너무 빨리 넘어가면 언젠가는 글과 사람 간의 괴리가 생긴다 했다. 글은 그럴싸하게 쓰는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거나. 그래서 희범 님은 작가가 곧 작품인 인생을 살라고 하셨다. 예도 들어주셨는데 10억까지밖에 못 벌어본 사람은 10억 만드는 법에 대한 이야기만 할 수 있으니, 지금은 10억 버는 법을 더 열심히 쓰기보다 100억으로 키우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모두 내가 경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내가 이제 쓰고 싶은 글이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말에는, 그건 따로 시간을 쏟아야 하는 영역은 맞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은 타고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더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지만, 내가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니 이 부분은 그냥 참고만 하기로 했다.
삶은 글보다 크다
그리고 그 시기에 문유석 님의 <나로 살 결심>을 읽었는데, 여러 번 내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나와 생각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겪은 진짜 경험이, 나를 뒤흔든 진짜 감정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작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약 국문과나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 이야기꾼으로서 나의 한계, 정체성.
누가 좋아하는 글을 쓸 것인가? 글을 쓰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고민과 결부된 문제로 가닿았다.
나는 애초에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이 능수능란하게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미 확고하게 형성된 가치관과 취향. 어떤 이야기를 하든 살아오면서 했던 경험과 고민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곤 한다. 나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쓰지 못한다.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쓸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열심히 쓰는 것 아닐까.
어차피 나는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쓸 수 없는 사람이니까
독특한 직업 출신의 작가에게 기회가 생기는 것.
소재의 다양성과 구체성이 큰 무기였다. 평생 그 직업에 종사하면서 쌓은 경험과 디테일,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 역시 일을 시작하고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여러 일들을 경험하며 이런 것들은 글로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시작됐고,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일을 시작한 지 5년쯤 되었을 때부터 조금씩 풀어놓을 수 있었다. 나도 경험으로부터 글감을 얻다 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밖에 쓰지 못하고, 내가 살아온 모습과 맞닿은 결론밖에 내리지 못하는 것이 한때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게 내 정체성이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내기만 한다면 계속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문유석 님처럼 첫 번째 삶을 정리하고 글 쓰는 두 번째 삶으로 가는 시점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 더 내가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
내게 본업은 어떤 의미일까. 한때는 마케터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며 이 일만 원했던 적도 있다. 그러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야기들을 찾고 글로 남기는 것은 일이라기보다는 내 삶의 태도 같았다. 내게 본업이란 내 삶을 지탱하면서 계속 내가 공감하고 쓸거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이고, 글쓰기는 내 삶의 태도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다른 일을 했어도, 그래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졌을 다른 평행 우주에서의 나들도, 지금 나이가 되면 다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을 했듯 일을 하다 보면 깨닫는 것들이 생겨나서, 글을 써서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건드려질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글 쓰는 것은 삶의 태도라서, 어느 직업을 선택하든 지금 시점의 나는 글을 쓰고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닿았다.
Connecting the dots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여러 혼재된 기준들 - 글 쓸 틈이 있어야 하나, 의미는 있어야 하는데, 일상 비타민 성격이면 좋겠다 등- 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커피챗이든 면접이든 만나보고 조금이라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을 가자는, 직감적인 기준 하나만 가지고 최대한 많이 만나보는 것을 선택했다. 내 업 가치관이 바뀌면서 ‘기준’이라는 것이 모두 사라졌다 보니 마음을 따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 막 다니게 된 회사를 보면 기존에 갖고 있던 여러 기준이 혼재된 듯 왜 이 회사를 선택했지 바로 답하기 어렵기는 하다.
그럼에도 무엇 하나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을 다시 믿기로 했다. 본업을 다시 손에 쥐었고 여기서 여러 문장들을 얻으면서,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들을 만나보려 한다. 스스로 고민하던 빈칸, 삶은 글보다 크다는 명제는 찾았고, 글을 여유 있게 쓰지는 못하겠지만 밀도 있는 문장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다음 글은 7개월간의 실험을 돌아보는 글로, <직장인 독립 실험>을 매듭지으려 한다.
삶은 글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