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행복~ 가까운 축복~
그대 삶이 힘겨울 때
세상 이별하는 사람들을 그려보세요
남아 있는 그대 호흡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그대 행복하다 못 느낄 때
자신을 바라보세요
그대의 두 팔과 두 다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대 혼자라 느껴질 때
아이들 소리만 있는 둥지를 그려보세요
가족 없이 홀로 외론 애들에게
얼마나 큰 감정의 사치인지
그대 슬플 때
곁에 있는 친구를 바라보세요
그댈 위해 기도하는 그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대를 위해 기도하렵니다
가까운 행복 느끼며
가까운 축복 누리며
감정의 사치에서 빠져나오게 해달라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 살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현실 망각에 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현실의 행복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펜서 존슨은 오늘의 행복을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물’이란 책에서 ‘오늘 즉, 지금이 선물이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Present는 명사로 쓰이면 ‘선물’이요, 형용사로 쓰이면 ‘지금의’, ‘현재의’라는 뜻입니다. 고로 지금이요, 현재인 오늘은 선물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란 생명의 선물을, 그것도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래스는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며 오늘 내게 주어진 생명에 대한 감사와 오늘 선물처럼 주어진 삶에 대한 충실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게 더 큰 선물은 없을 텐데... 더 큰 욕심으로, 자족(自足) 하지 못하는 감정의 사치로 살지는 않았는지요...
사람들은 작은 슬픔에도 마치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인 줄 착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던 헬렌켈러는 은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답니다. “봄이 오면 나는 벚나무의 가지를 손으로 더듬어봅니다. 벚나무 등걸 속으로 흐르는 물을 나는 손끝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놀라운 기적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들이 하루에 한 시간씩만이라도 장님이 되거나 귀머거리가 된다면 저 벚나무의 꽃과 저 나뭇가지를, 날아다니는 새의 울음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사소한 기쁨이야 말로 최고의 은총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의 사소한 것과 일상들이 최고의 은총이요, 행복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우리가 가진 것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리가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며,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