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빠와 함께 밴쿠버 다운타운으로 향해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러 갔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 뮤지컬 작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공연은 약 두 시간 반이었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었다.
사실 나는 공연을 보러 가기 전부터 너무 피곤해서,
집에 아빠가 와서 나를 데리고 같이 가기로 해서 소피랑 낮잠을 좀 자고 있었다.
결국 나는 늦게 도착해서 처음 시작하는 오프닝을 놓쳐버렸다. 무대가 열리는 그 첫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공연 내내 마음에 남아 속상했지만, “아빠 올 때까지 좀만 더 참을걸…” 하는 후회도 함께 밀려왔다.
하지만 공연 자체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배우들의 호흡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중간 휴식 시간에 나는 오프닝을 못 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기념품을 하나 사달라고 아빠에게 약속을 잡았다. 아빠는 공연이 끝나면 꼭 사주겠다며 웃어 보였다. 덕분에 나는 결국 귀여운 품바 인형을 한 마리 데리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오프닝을 보지 못해 속이 쓰렸지만, 공연은 그 아쉬움을 잠시 잊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심바, 티몬, 품바, 무파사, 스카, 날라… 그리고 수많은 다른 동물들까지.
배우들이 만들어낸 움직임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진짜 같았다.
“얼마나 연습했길래 이렇게까지 자연스러울까?”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람이 주는 행복과는 또 다른, 동물이 주는 특별한 위로와 행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어느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무대를 따라갔다. 비록 오프닝은 못 봤지만, 그 장면이 주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에 더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결국, 2주 뒤 나는 <라이언 킹>을 한 번 더 보러 갔다.
오프닝을 보기 위해서였다. 티켓 값은 솔직히 부담됐지만, 마음 한 편의 공연을 처음에 못 봤다는 미련을 지우고 싶었다. 이번에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작은 새 인형을 하나 사들고, 일찍 자리에 앉아 오프닝을 기다렸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내 앞자리의 관객 한 명이 홀로 무례하게 일어서버렸다. 해가 떠오르고 동물들이 나오는 결정적인 첫 장면을 또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순간의 허탈함과 화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정말 일어났던 관객한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공연장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괜히 시비 걸었다가 내가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싸움이 걱정되어 겨우 참았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라이언킹 뮤지컬을 편하게 보기 위해서라도 그 관객을 하늘까지 날려버리고 싶었다.
결국은 그 관객이 다 망쳐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토끼 눈을 뜨고 목숨 걸고
그 재미있는 공연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관객을 향한 분노와 아쉬움이 뒤섞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언 킹>이 주는 감동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참고 넘기려 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졌다.
내 앞에 있던 관객이 했던
그런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도 내년 3월에 있는 레미제라블 뮤지컬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재미있게 볼 것이다.
그러나 이 뮤지컬이 얼마나 재미있을지는 아직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내가 너무 라이언 킹에 푹 빠져서 그런지 헤어 나올 수도 없을 만큼 아직까지는 라이언 킹 보다는 레미제라블이 조금 덜 재미있을 것으로 예상되긴 하는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 ㅎㅎ
라이언 킹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