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기가 잠을 자지 않는 건, 삼신할미 때문이야.

<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by 마림

어릴 적 나는 잠을 자지 않는 아기였다.


눈만 말똥말똥 뜬 채 엄마 등에 업혀 밤을 지새우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속삭이셨다.


“제발 잠 좀 자라. 아가야.”


병원에 데려가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종교가 없던 우리 집이었지만, 교회에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봤다. 기도를 드려봐도 아기는 눈만 말똥말똥 뜬 채 잠을 자지 않았다. 마치 영화 파묘의 귀신 씐 아기 같다고, 엄마는 혹시 조상님이나 삼신할머니의 노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다.


결국 무당을 찾아갔고, 조상님의 노여움 때문에 굿을 해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굿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고향인 영덕 산속 깊은 곳에서 한겨울 제사를 지냈다. 부모님의 마음은 추웠지만, 간절함이 추위를 이겼다. 굿은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고, 가족은 녹초가 된 몸으로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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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아기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미신을 믿지 않는 우리 가족에게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훗날 엄마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여전히 놀랍다.


아마도 그것이 플라시보 효과였을까. 실제로 약리학적 효능이 없는 가짜 치료를 받아도 심리적 요인으로 상태가 호전되는 현상 말이다. 어린 아기가 플라시보 효과를 느낄 리는 없지만, 굿을 통해 부모님이 위로와 희망을 얻었고, 그 마음이 아기였던 나에게까지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수천 년 동안 종교는 인간의 간절함을 담아온 그릇이었다. 영화 곡성이나 파묘가 흥미를 끄는 이유도 바로 그 신비로움과 미스터리 때문일 것이다.


AI 시대에 진짜와 가짜, real과 fake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종교가 과학적인지,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간절히 바라는 마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태도 아닐까.


마치 삼신할머니의 노여움을 엄마의 간절함이 풀어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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