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우리 집은 아빠, 엄마, 형, 그리고 나. 네 식구다.
막내딸을 바랐던 부모님은 어릴 적 나를 딸처럼 키웠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던 터라, 애교도 많고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엄마는 어린 나를 끌어안고 자주 말씀하셨다.
"더 자라지 마. 우리 아들. 이대로 엄마 옆에 있어줘."
그러다 고등학교 때 사춘기가 찾아왔다. 대단한 사고를 치고 속을 썩은 건 아니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 힙합 동아리에 들어, 작사작곡했던 노래가 있었는데 제목은 'Dear.mama'
Dear.mama(from 2007)
1991년 1월 31일
내가 태어났던 그때
딸을 바라며 기대했건만 아들이 태어났네
하지만 태어난 걸 어쩔 수가 없네
아들 둘을 가지게 된 엄마
주위에선 힘들 거란 위로의 말들 뿐이지만
그러나 엄만 믿지 않으셨지
훗날 자기를 지키는 장군들이 될 거라 굳게 믿으셨지
내 키가 자라고 사랑도 자라고
난 사랑스런 엄마의 아들
주위에선 똑똑하고 착한 아들내미
집에서도 말 잘 듣고 이쁜 아들내미
그러다 내가 사춘기가 온 거야
모든 게 짜증 나 버리기 시작해
혼자만 홀로 있고 싶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너무나 짜증 나 너무 싫어졌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데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건데
인생 살아가며 우리 엄만 한 명인데
내가 끝까지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데
왜 몸과 맘이 따로 노는 건지
항상 나만 생각하는 건 우리 엄만데
왜 말이 안 나오고 한숨만 나오는 건데
왜 난 사랑한다고 말 못 하는 건데
엄마에게는 한 번도 쑥스러워서 들려드리지 못했던 노래를, 20년 가까이 지나 들려드렸다. 우연히 어릴 적 녹음했던 파일을 발견하여, 그 시절의 나와 엄마를 추억하고자 했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네가 그렇게 예뻤는데. 예쁘던 막내아들 어디 갔니."
"..."
엄마와 따뜻한 기억을 추억하고 싶던 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는 지금의 내가 미워 보이시는 걸까. 왜 항상 어릴 적 나만 그리워하시는 걸까. 지금 내가 뭐가 어때서? 엄마는 내가 창피한 것일까.
속상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머릿속을 지배하다,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엄마는 왜 항상 예전의 나만 그리워해? 지금 내가 뭐 어때서. 나는 좋은 마음으로 엄마한테 보낸 건데,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엄마는 그냥 항상 널 보면 안쓰러워서 그래."
엄마의 말이 나의 심장을 더 후벼 팠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나도 멋진 아들이 되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가 않은데 어떡해.
오랜만에 용기를 내었던 나의 마음이 외면당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며칠이 지나도 마음이 영 나아지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엄마가 했던 말이 상처로 남아서, 아직 마음이 풀리지가 않아. 내가 예전보다 그렇게 미워? 내 인생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나를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고 응원해 줘."
"엄마는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야. 아직도 엄마 친구들은 엄마를 부러워해. 아들 잘 둬서. 엄마는 아들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냥 엄마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야. 엄마가 어릴 때 얘기를 하는 건, 그냥 내 품에 있던 네가 그리워서 그래. 지금 하고 싶은 일 열심히 잘하고 항상 행복해. 엄마는 그거면 돼."
엄마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마음은 내가 엄마 품에 있을 때의 엄마가 그리운 것일까. 아마도 엄마는 지금의 내가 미운 것이 아니라, 안쓰럽고 걱정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다. 좋은 말보다 걱정하는 잔소리가 먼저 나가는 것은 엄마의 사랑 표현 방식일 테니.
알면서도 항상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자식의 숙명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더 잘해야지, 연락 한번 더 드려야지, 다짐하면서도 또 잊어버리는 것 또한 자식의 숙명일까 하면서도.
내 걱정 좀 그만하시고, 잔소리 좀 그만하시고, 답답하고 짜증 나면서도
힘이 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늘 엄마다.
아마도 나는 평생 엄마의 애물단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