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승부'를 보며, 바둑의 매력을 다시금 느꼈다.
정적처럼 보이는 바둑판 위에서 사실은 머릿속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상대와 끊임없이 수싸움을 벌이며 돌 하나를 두기 위해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고민한다. 그 치열함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에, 바둑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어릴 적 나는 바둑 기원에 다니며 9급까지 땄던 적이 있다. 또래보다는 실력이 괜찮아 어른들과도 대국을 하곤 했다. 바둑 자체의 재미보다, “머리가 좋다”라고 인정을 받는 일이 더 기뻤던 것 같다. 그러나 바둑은 진로라기보다는 두뇌 계발의 수단에 가까웠고, 중학교에 올라가며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다.
나이가 먹고 나니, 이세돌 9단의 AI 대국, 영화 '신의 한 수'나 '승부' 같은 작품을 보며 종종 바둑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곤 한다. 온라인 바둑을 켜서 몇 판 두어 보기도 했지만, 세월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포기하기로 했다. 언젠가 마음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취미다.
피아노도 아쉽게 그만둔 취미 중 하나다.
어릴 적, 엄마의 권유로 학원에 다니며 체르니 100까지는 버텼다. 연습을 인증하는 종이에 거짓 동그라미를 그려 넣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연습이 지루하고 따분했다.
억지로라도 조금씩 이어갔다면 지금쯤 악보를 보며 좋아하는 곡들을 연주하는 정도의 취미는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클래식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낀다. 손열음의 연주를 듣거나 지브리 피아노곡을 찾아 듣고, 아름다운 쇼츠 영상 속 피아노 선율을 플레이리스트에 담곤 한다. 그럴 때면, 피아노를 놓아버린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이 괜히 아쉽다.
물론, 박보검을 보며 든 생각은 아니다.
스무 살 무렵엔 기타를 배운 적도 있다.
클래식 기타를 사서 학원에 다니며 기본 코드와 ‘로망스’ 같은 간단한 연주곡을 익혔다. 그러나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고통이 싫어 금세 연습을 게을리했다.
캐나다 유학 시절, 집 앞의 공원이 너무 아름다워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를 메고 공원으로 가 혼자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사실 칠 줄 아는 건 기본 코드 몇 개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낭만적인 기분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햇살과 바람, 기타 선율이 어슴푸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조금만 더 꾸준히 연습했더라면, 그 낭만을 지금까지도 이어올 수 있었을 텐데.
30대 중반이 되어 돌아보니, 그만둔 취미들이 유독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지금도 축구나 야구를 즐겨 보고, 영화와 드라마를 감상하는 취미가 있다. 꼭 대단한 취미가 아니더라도 삶을 즐겁게 해 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는 충분하다. 다만, 바둑과 피아노, 기타는 오랫동안 노력과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에 더 아쉽다.
피아노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바둑은 초보자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다시 시도해보고 싶고, 기타는 유튜브를 보며 다시 손에 익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가장 강한 적은 게으름이다.
꾸준함이란 녀석이, 기적처럼 내게 와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