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에 한 번을 주기로 통증의학과를 찾는다.
50대에 무리한 산행 탓인지 무릎이 저려오고 통증이 있어 분기별로 문안인사 드리듯
병원을 찾는다.
다음날 여행을 떠나면 관광지에서, 걷는 시간과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자명하기에 건강에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예방 차원에서, 병원을 찾아 통증 주사와 약을
처방 받다.
이번 일본여행은 일본의 서남부에 위치한 후쿠오카(福岡)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하카타(博多)역에서 버스로 유후인(由布院)으로 이동하여 뱃부(別府)의 관광과 온천을 즐기는 코스로 2박3일의 일정으로, 금요일 새벽 인천 대한항공편으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본여행은 호기심 어린 기대심리와 일제강점기에 대한
오랜 역사적 반감이 함께하는 이중적 잣대를 가진 복합적으로 경계와 호기심이 교차하는 여행이다.
현지인을 방불케 하는 해박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그들의 역사까지 꾀고 있는 사위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지와 순발력을 갖춘 딸, 서툴지만 일본어를 장착한 손녀딸 아진!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아내 까지
팀웍은 완벽하다.
첫 번째 방문지 후쿠오카의 성터 방문에서 두 팀으로 갈리다.
평균기온이 28°내외로 선선 할 것 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일본도 한국과 같이 한여름 훅훅 찌는 더위에 얼굴이 발갛게 타오르고, 지열에 숨이 턱턱 막힌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 상승으로 복사열이 내륙을 덥히는 현상은, 이제 지구촌 모두가
겪어야 하는 재난의 수준이 되었나 보다.
후쿠오카성에서 내려다보는 폐허는 참 아이러니하다.
성의 규모가 오사카 성보다도 더 크고 웅장하였을 것 같은 규모이나 폐허의 원인이 궁금하던 차, 사전지식이 없었던 터인지라, 귀국 후 인터넷에서
찾아본 후쿠오카의 성은 에도시대에 일본내전의 공적으로 번이 성립되었으며 당시 성곽축조의 명인이 축성하여, 성의 축성이 훌륭하였고 주로 망루로 이루어져있었으나
명치시대에 폐성과 해체되는 수모를 당한 지방변두리 정권의 비애가 엿보이는
그냥 남의 나라 일이다.
구시다 신사는 한국인들에게는 공분의 장소로, 방문 전 부터 사위와 공감하는 적개심을 공유하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있던 장소로 원체 많은 한국인들이 후쿠오카를
찾다보니 일본인들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 칼의 자취가 묘연하여졌다 한다.
어디인가에 숨겨져 있겠지!
“얍삭한 일본인들 같으니라고!”
몇 달 전부터 꼭 함께하고 싶다는 정종 한잔에 오징어 회는 지금까지의 일본여행에서
음식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다.
껍질처럼 벗겨낸 오징어를 두 겹으로, 회와 튀김으로 분리하여 요리해낸 상상하지 못한 오징어회 요리다.
일본인의 좀생이 같은 요리방식에도 불구하고, 요리사에게 그 기발함에서 후한 별점을 드린다.
둘째 날 온천지인 유후인(由布院)까지는 현지 가이드가 안내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후쿠오카주변의
하카타(博多)역 앞에서 미리 예약된 버스를 타고 출발하다.
출발을 위해 집결한 우리 앞을 현지 가이드가 삼각 깃발을 들고 유후인을 외친다.
역사 앞에 모여 있던 엄청 많은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각자 자기의 약속된 깃발
아래 모여든다.
우리가 타는 탑승 차량은 한국인들로만 떠나는 빈자리가 없는 버스로 만원이다.
유후인의 날씨는 비가 조금씩 뿌리기도 하다가 개였다 또 비가 뿌리는 예측불허의 날씨다.
도로가 미끄럽다.
고즈녁한 시골 풍경에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북새통을 이룬다.
투어 중 잠시 일행과 떨어져 도로와 계단이 삼층으로 분리 되어 있는 커피매장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중에 가족인 듯, 젊은 부부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장난을 치며 길을 걷고 있었다.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내가 보기에는 별로 크지도 않은 동작으로 길을 가다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아이쿠’ 아이의 작은 비명이 일어났고 순간 그 가족이 얼어 붙었다.
넘어진 아이가 겁에 질린 듯 벌떡 일어나며 부모의 눈치를 본다.
“다치지 않았나?”하는 찰나의 생각과 그 아이의 부모가 어떻게 반응 할지 궁금하다!
이때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과 함께, 다짜고짜 그 어미가 아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중국인 이다!”
한참을 지나고 “으앙!”하고 떼쓰는 아이의 울음이 있다.
방금 전의 중국인의 반응도 있고 해서 어떻게 처리 될 것 인가의 귀추를
주목하다.
“시끄러 뚝 그쳐!” 한국인 이다.
“안 그치면 아빠한테 사주지 말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의 협박이 먹혔던 모양인지 울음이 잦아들어진다.
“다행이다 손찌검은 없었으니까!”
유후인에서 한중일 삼국지를 보는 듯하다.
일본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거는 매뉴얼이 없다.
어려서 들은 말로는 일본인은 숨죽여 울음을 삼키며 운다고 하였던가?
일본은 무엇으로 먹고 살고 있는가?
처음 일본을 방문 하였을 때 ‘매뉴얼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망할 것’같은 일본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의혹이 가는 곳마다 따라 붙었었다.
융통성 없고 창의력이 없는 벽창호 같은 일본인들이 어떻게 선진국이 되고
제국주의 강국이 되었나? 하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었다.
지난번 여행까지는 일본의 지정학적 폐쇄성 때문일 것 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유후인 곳곳에 오래된 노포들 안에서 꼬부랑 일본인들을 보며, 단순히 폐쇄성만은 아닌 것 같은 노력과 인내 그리고 기발한 창의력이 보였다.
꼭꼭 숨겨놓은 역사와 전통을 먹고 사는 일본 원숭이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그들의 멋이다.
물론 그 벽창호 같은 꼬장꼬장한 답답함은 그대로 두고서 말이다.
다만, 이제는 편견 없이 현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떠나기 전날 저녁은 특별히 가이세키 요리로 준비하여 특별한 만찬을 즐기다.
만찬 후에 노천 온천은 처음 겪은 문화다.
온천에 몸을 의지하여 편안한 휴식으로, 비와 온천지역의 습기로 눅눅해진 몸의 피로가 한꺼번에 가시는
상쾌한 기분은, 다음날 아침 한 번 더 즐긴 후에
귀국 길에 오르다.
공항에 돌아온 고국은 여전히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