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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Aug 29. 2020

그 시절, 저녁 발길이 안 무겁던 이유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줄거리가 언급되지만,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영화 <라라랜드>

미국 어느 고가도로.

내리쬐는 햇볕 아래, 차들이 주차장에 서 있는 것처럼 멈춰 서있다.

영상을 통해 보는데도 더위와 짜증이 느껴진다.


빵빵~하는 경적소리 사이로 갑자기 노래가 시작된다.

오프닝 씬부터 '자, 뮤지컬영화 시작합니다~'라고 확실히 각인시켜준 라라랜드.

분명 "엠마 왓슨과 라이언 고슬링이 나온다"라고 했는데, 엠마도 라이언도 아닌 사람들이 자차에서 하나 둘 나오더니 노래를 하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흥겨운 노래를 배경 삼아서 보드 묘기를 하기도 하고, 파쿠르 동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탭댄스, 탱고 같은 춤, 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저마다의 차 위에 올라서서 한 바탕 군무까지 추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 영화 제목이 등장한다.

<라라랜드>


그리고, 내가 기대하고 있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땐 몰랐지.......

음악과 화면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활력에 빠져서 이 영화를 처음 볼 땐 가사를 흘려 들었다.

최근에 이 영화의 오프닝 씬을 다시 봤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주차장처럼 길게 늘어선 차들.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죄다 노래와 춤, 악기 연주에 능한 예능인이었던 것은 단지 화면 구성을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스타가 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어느 도시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가사가 꿈을 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겠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만이 정말 스타가 될 수 있었겠지.


문득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보며 했던 생각도 참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난 엠마를 보러 왔는데 오프닝 곡을 시작하는 저 배우는 누구지?



저녁~밤 시간을 좋아하던 이유

대학에서 모든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가장 늦을 때가 대략 19시 반, 여름에는 그 시간에도 햇빛이 남아있었지만, 겨울에 가까워질수록 한밤중과 같은 어두웠던 시간.

나는 그즈음이 좋았다.


첫 번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수업이 끝났으니까. 학생이 본 업인 사람에게 수업 끝!이라는 세 음절은 엄청난 해방감을 주는 말이었다.

둘째, 대학의 멋진 석조 건물들에 노란 등이 켜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노란 불빛을 반사하는 대학 건물들 덕에 나는 매일 저녁 꼭 다른 세계, 다른 나라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 세 번째, 내가 향하는 곳에서 저녁이 되어야 나타나는, 아름다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저녁부터 밤까지 이르는 시간,
사당역 부근과 혜화동 대학로 골목에서는
각종 라이브 음악이 들렸다.



저녁에만 들리던 1
사당역 부근 음악

대학 재학 중, 수업이 끝난 뒤에 나는 주로 혜화동 대학로와 사당역 부근을 많이 오갔다.


특히, 사당역 쪽은 대학에서 사고가 아니고서는 막힐 수가 없는 전철을 타고서도 50여분을 가야 했는데, 시야가 좀 느지막이 어두워지는 여름에도 이동 전후의 체감 시차가 퍽 크게 느껴졌다.

그림자가 조금 길어질 때 학교를 나섰고, 전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 인파에 끼여서도 붉은 노을을 멋지다며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목적지에 내리면 어둑어둑했다.


목적지인 사당역에 내려, 10번 출구로 나서서 번쩍이는 간판들을 뒤로하고 주택가로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그때부터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환청이나 mp3가 아니라 진짜 생 음악이.


그 골목을 지나다닐 때마다 확실히 알아볼 생각은 안 하고 '듣기 좋다~'하고 지나다녔던 터라 지금까지도 확실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같은 음악이 며칠 동안 들렸던 적이 있어서 연습실이 있었나 보다 하고 추측하고 있다. 근처에 유명 연기+뮤지컬 학원이 있었기 때문에 소리가 잘 흘러나오지 않는 지하 연습실도 곳곳에 있었을 것이다.

첼로,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 소리도 들렸고, 노래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골목이 아니더라도 사당역사 내에서 음악 연주회나 짧은 연극 공연이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 공연들 역시 저녁시간에 진행되었다. 어쩌다 합창단이 공연하는 날에는 지하철에서 내릴 때부터 어디선가 예쁜 노랫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저녁에만 들리던 2
혜화동 골목 음악

혜화동 대학로에서는 주말마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키는 유명한 두 아저씨 기타리스트도 계셨고, 이미 프로이거나 프로 예술가를 꿈꾸는 가수, 연주자, 춤이나 마임 등의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예술을 선보였다.


주말이 아니더라도, 오후 공연을 보고 저녁에 공연장을 나서면, 개방형 카페나 음식점에서 누군가 피아노나 기타 혹은 타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막 공연을 보고 나와서 아직 꿈꾸는 듯 한 기분을 느끼며 각 건물을 밝히는 조명들과 인파 사이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면, '막차 시간이고 뭐고 저 불이 다 꺼질 때까지 여길 걷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마음을 누르기가 너무 어려울 정도로, 그런 시간과 그런 분위기가 참 좋았다.



내 기억 속 City of stars

내가 알던 city of stars, 사당과 혜화동 대학로.

그 순간, 그 공간에 있던 있던 사람들은 지금 스타가 되어 있을까?

지금도 스타가 되길 꿈꾸고 있을까?



또다시
현장에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나는 지금도 공연을 좋아한다. 하지만, 유튜브나 네이버 tv 등 온라인으로 송출되는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아무래도 허전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파 속에서 호응하며 공연을 즐겼는데. 이 기억이 너무 오래된 옛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관객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예술가, 기획자, 창작진, 공간 운영 등 여러 분야의 현직자분들.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공연장에서 호응하며 함께 즐거움을 누리길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글감과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Ruslan Aleks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삽입 영상: 영화 <라라랜드>오프닝 씬 https://youtu.be/xVVqlm8Fq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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