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의미로 말이 필요 없는 공간, 골방 유니버스
여행 계획을 할 때마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공간을 먼저 정한다. 그 다음에는 교통편과 근처 숙소를 예약한다. 그러고나서 온라인 지도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더 살펴본다. 가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저장 기능을 활용해서 핀을 찍듯이 별을 콕 박아둔다.
경주골방도 그렇게 발견했다. 숙소 인근에서 여행자의 밤 낭만을 어디에서 풀어볼까 하다가 발견했다. 사실, 온라인 지도에서 골목을 들여다보다가 '골방'이라는 단어에 꽂혀 설마?하고 돌아봤던 장소다.
지난 2월에 수원 여행을 할 때, 분위기도 이름도 비슷한 공간을 이미 한 번 방문했기 때문이다. 수원에 있는 곳 이름은 '행궁 골방'이었다. 경주는 '경주 골방'.
뭐지 이거 프랜차이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도를 바짝 축소해다가 '골방'을 검색해봤다. 다른 업체들도 검색에 걸리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전국 여러 곳에 내가 경험한 곳과 비슷한 '골방'이 들어서있었다. 수원, 경주, 서울, 대구, 강원, 그리고 제주에도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깔려 있는 골방들을 연결하는, '전국 골방' 인스타그램도 있다(인스타 @golbangworld). 수원에서 경험한 골방이 마음에 쏙 들었던 터라, 가능하다면 각지의 골방들을 하나씩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주 골방 가장 마지막 입장 시간인 21시 예약 했다.
업체에서 등록한 사진과 방문자들의 리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각지의 골방은 이름만 비슷한 게 아니라 분위기도 비슷하다. 골방 시그니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겠다.
나는 어두운 나무 톤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골방에 들어서자마자 매우 편안했다.
우드톤을 기본으로 하는데,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소품으로 보이던 초록 헤드 랜턴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소품을 통해 빈티지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공간 구성이 이렇다보니, 우드톤과 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감상이나 음료 섭취 전부터 취향 저격 당할 수밖에 없다.
수원에서는 성곽 야경 산책 후, 경주에서도 월정교 야경 산책 후에 방문했다. 편안한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다.
*수원은 토요일 가장 늦은 시간 22시, 경주에서는 평일 제일 마지막 예약시간인 21시에 방문했다. 두 골방 모두 이용 시작시간부터 2시간 동안 머물 수 있다.
카카오톡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오픈 채팅방 중, 말 없이 특정 사진만을 올리는 방들이 있다. 일명 '고독한ㅇㅇ방'. 연예인 팬들도 있고, 어느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모인다. 예를 들어, '고독한 박명수 방'이라고 한다면, 해당 예능인의 사진만으로 대화를 하거나 사진 공유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골방 유니버스'에 속하는 골방들은 '고독한 음악 방'이라고 보일 지도 모르겠다. 일행과 함께 방문했더라도 대화 금지! 음악 감상하면서 휴식을 누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최초에 운영자분께서 이용안내를 해주실 때 말고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게 되는 마법의 공간이다.
음악 신청도, 식음료 주문도 인스타DM으로 한다. 직접 말을 건네지 않는 서비스라고 해서 딱딱하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음악을 유튜브 링크로 신청하는데, 버퍼링이 너무 걸려서 건너뛰었다면 '한 번 더 해보고 또 안될 수 있으니, 다른 곡 링크도 보내주세요'라는 따듯한 DM안내도 받았다. 이용 안내를 해주시려는데, 행궁 골방에 가본 적 있다고 말씀드리니 퇴장할 때 인삿말로, 그리고 리뷰에 덧글로 반가움을 표현해주시기도 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다녀간 방문자들이 저마다의 여행 이야기, 고민, 다짐 등을 방명록에 적는다. 비슷한 나잇대를 마주치거나,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꼭 필요한 조언이 담겨 있거나, 추천한다는 곡이 마침 재생되고 있을 때 반가움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두운 우드톤 인테리어에, 편안한 의자에, 은은한 조명, 꿉꿉하지 않은 공기, 음악이 가득 채우는 공간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은 말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가 느끼기에 골방유니버스에 속한 공간들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한 곡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Are you alone?
우린 지금 연락해야 해.
서로의 안부를 챙겨주며, 복잡한 얘기를 들어주면 돼.
어떻게든, 우린 지금 연결되어야 해.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10cm,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