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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가야 했는가

by 경계 Liminal

퇴사는 나에게 결정이라기보다 결과였다. 나는 단지 견디지 못했고, 그 견디지 못함을 자책하느라 더 오래 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은 무거워졌고, 마음은 차가워졌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기력이라는 이름의 안개가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내가 다닌 직장은 겉으로 보기엔 무난했다. 일이 너무 고되지도 않았고, 특별히 모욕적인 언사가 오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피로가 존재했다. 명확하지 않은 역할, 오가는 책임 떠넘기기, 상사의 말 한마디에 뒤틀리는 공기. 나는 매일같이 스스로를 조정해야 했다. ‘예민하지 말자’, ‘적응하자’, ‘이것도 다 사회생활이다’라고.


나는 회의 시간에 침묵했고, 사소한 농담에도 웃지 못했다. 동료와의 대화는 피로를 남겼고, 상사의 말투 하나에 감정이 뚝 끊겼다. 업무의 본질보다는 분위기를 읽고 해석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피로는 어느 순간, 체감이 아니라 전제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상사의 말투 하나에 눈물이 났고, 어느 날은 대답조차 하기 힘들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탈진했다. 무례와 애매함, 무시와 침묵이 쌓여 그 자체로 환경이 되었다.


퇴사는 회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탈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부식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나 자신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다 버티는데 왜 나는…’이라는 자책이 날마다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나의 감각이 있다. 견딜 수 없는 환경은 견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떠나야 할 조건이다. 퇴사는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나를,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시간.


퇴사는 내가 나를 믿기로 한 첫 번째 실천이었다. 지금의 나는 퇴사한 내가 지켜낸 나다. 그리고 이 글은, 그 결정을 언어로 증명해내는 또 하나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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