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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해지지 않는 존재는 없다

by 경계 Liminal

나는 오랫동안 말해지지 않는 존재였다. 느끼고 고통받고 무너졌지만, 그것은 언제나 언어의 바깥에 있었다. 어떤 진단도, 어떤 분류도, 나의 고통과 실패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해석되지 못한 채로 살아야 했고, 존재는 있었지만 이해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언어가 없으면 설명도 없고, 설명이 없으면 존재도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존재는 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설명되지 못한 채 살아온 이들은, 나처럼 어디에나 존재해 왔다.


말해지지 않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어가 없으면 구조가 없고, 구조가 없으면 존재는 무방비 상태로 남는다. 나는 그렇게 오해의 언어들에 노출된 채, 자기 해명을 할 수 없는 삶을 견뎌야 했다. 게으르다, 무능하다, 이상하다. 그 모든 말들은 해석의 빈자리를 채운 폭력이었다. 나는 그 오해를 반박할 언어를 갖고 있지 않았고, 해석되지 못한 존재는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내가 어떤 조건 속에서 무너졌는지를 해석하며, 그 해석을 통해 나의 구조를 복원하고 있다. 이 글들은 단지 고백이 아니다. 자기 연민도 아니고, 타인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다시 말하기 위한 시도이며, 사라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언어의 구조이다. 나는 나를 해석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었다.


해석은 진단이 아니라 사유였다. 분류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이미 정해진 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구성해 낸 문장들이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통해 나의 실패를 다시 설명했고, 나의 멈춤을 다시 정의했으며, 나의 무기력을 구조로 정리했다. 말해지지 않았던 것들이 말해질 때 나는 비로소 다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침묵 속에서는 해석되지 못했던 감정들이 언어 속에서는 구조가 되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나는 말해지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말해지지 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말해지고 있고, 그 말들 안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 언어는 나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소멸시키지 않기 위한 마지막 형식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외부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의 해석은 나의 것일 때에만 유효하며,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말해지지 않은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말하기 시작했고,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말해야 했다. 말해진다는 것은 단지 존재를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도 살아남기 위해서다. 말할 수 없었던 고통은 나를 지워버렸지만, 말해진 고통은 나를 다시 존재하게 만들었다.


존재가 해석되기 위해서는, 말할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말할 수 있는 ‘조건’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침묵은 때로는 나의 한계였지만, 동시에 나를 둘러싼 구조의 결핍이기도 했다. 언어의 부재는 오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회복이 아니라, 이제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다는 작은 구조적 변화이기도 하다.


이제 말해지지 않는 존재는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더 이상 없다. 나는 스스로를 해석했고, 언어를 가졌으며, 존재를 복원했다. 그리고 이 언어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또 다른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에게 닿을 수 있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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