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작은 박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에 맞추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다친 것인지, 감기에 걸린 건지, 아니면 큰 병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이 존재가 어떤
생명체인지도 모른다. 간절한 마음으로, 브리는 손안의 생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병이라도 알아낼 수 있을 듯, 아니면 투시라도 하듯—불투명한 몸을 세세하게, 조심스럽게, 애틋하게 살폈다.
처음 보는 생명체. 어딘가 낯설지 않은 형체. 느릿하게 심해를 유영할 듯한 나른하고 영롱한 곡선. 희미하게 빛나는, 낯선 물결을 담은 작은 영혼. 정말 투시라도 한 걸까.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브리의 눈이 반짝였다. 재빠르게 방향을 틀어, 곧장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치발을 들어 세면대 위의 비누 받침대에 조심조심, 생명을 올려두었다. 급히 들어오느라 불도 켜지 않은 화장실. 빛이라고는 위쪽, 작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볕 한 조각이 전부였다. 어두운 공간 속, 요정의 몸 중앙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분홍빛은 더욱 선명하고 따뜻하게 보였다. 그 신비로운 빛에 매료되어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던 브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두 뺨을 찰싹! 소리 내어 때렸다.
‘안 돼, 감상할 때가 아니야!’ 뺨에 올렸던 손을 그대로 내려 수도꼭지를 틀었다. 콸콸콸—세면대에는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얀 증기가 피어오르며, 공기를 덥히고, 공간은 금세 습기를 머금는다. 브리는 단단히 믿고 있었다. 이 존재는 물에 닿으면 생기를 되찾을 거라고. 나린아의 모습이 바닷속 생물, 해파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촉수처럼 흐드러진 실타래, 물큰한 감촉, 불투명한 피부와 살랑이는 치맛자락 같은 몸통. 그러니까—물 속이 익숙할 거야. 브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영특한 판단처럼 보이지만—그건 너무도 안타까운 오답이었다.
나린아의 몸은 구름과 같은 ‘증기’로 이루어져 있다. 물과 맞닿는 순간—그 몸은, 그 존재는, 조용히 스며들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그 사실을 모르는 브리는, 흐르는 물을 점점 더 가깝게 요정에게로 끌어댔다.
불안정한 독수리의 등 위, 철사로 고정한 인형처럼 움직임 하나 없는 장로가 앉아 있다. 장로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계산해 히비가 떨어졌을 만한 위치를 가늠한다. 지시받은 방향을 향해 독수리는 망설임 없이 날갯짓을 더한다. 그러나 그의 비행은 불안정하다. 높이 솟았다가 가라앉고, 우측으로 쏠리는 몸. 마치 몸통 중앙에 앉은 장로를 가지고 노는 듯. 불어오는 바람은 그저 부드럽게 털을 쓰다듬는 데 그치고, 실제로 독수리를 뒤흔드는 것은 등 위에 얹힌 장로의 무게였다.
그러나 그 무게는 단지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장로와 독수리, 각자의 중심은 서로 다른 것을 향하고 있다. 침묵으로 점철된 죄책. 땅과 하늘 사이에서 갈피를 잃은 독수리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비행에 집중하려 애쓴다. 반면 장로는 오롯이 ‘자신’만을 지키는 데 몰두한다. 35만 년을 품은 존재가, 지금껏 자신이 쏟아온 하늘의 무게가 결국 인간들의 배반과 상실로 이어졌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메스껍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수천 겹 향기로 뒤섞여 올라오지만, 이를 애써 눌렀다. 마음을 묻고 머리로 버텼다. 떨리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지만, 힘은 또 다른 떨림을 낳았고, 결국 평온을 가장한 숨을 몰아쉬었다. 비행이 불안정했던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각자의 무너지는 중심을 지키기에만 바빠 서로의 불안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상 또한 그랬음을.
우주선이 발사되었다지?
인간들은 똑똑해!
우주는 얼마나 넓을까?
나중에 우주에 가볼 수 있을까?
바람결을 타고 전해지는 이야기들. 사람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생명들이 들뜬 마음으로 우주선에 대해 속삭인다. 그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간신히 유지해온 중심이 흔들린다. 빌어먹을.
땅이 가까워질수록, 우직하게 뿌리 내린 나무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수천 년을 그 자리에서 살아낸 나무들은 말투는 다정했지만, 그 무게는 새나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세상은, 더는 땅에만 머물지 않는구나.”
하— 틀림없이 장로도 이 말을 들었을 것이다. 구원을 바라던 땅이, 이제는 하늘을 외면하고 있는 걸까. 독수리는 코웃음을 흘렸다. 하지만—그들은 늘 그랬지 않은가. 동굴을 나와, 숲을 지나, 바다를 넘어, 결국엔 하늘까지도. 새보다도 더 오래, 더 자주 하늘을 바라보던 인간들.
그리하여 날개조차 없는 그들이,날개를 만들어 내더니, 기어코 날았다. 그 모든 것이—개탄스러울 정도였다. 우주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단지 감히 닿아서는 안 될 세계를 침범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독수리는 입술을 깨물 듯 부리를 다물고, 비행 속도를 더 높였다.
바람결에 섞인 말들이 더 머물지 못하게. 자신의 불안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얼마 지나지 않아, 땅에 발을 디뎠다. 착지한 곳은 자그마한 숲이었다. 나린아를 맞이하듯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환호하는 소리를 내고, 그 따뜻한 울림에 장로는 잠시 눈을 감는다.
오랜만에 닿은 잔디의 부드러운 촉감과 햇빛의 기운이 천천히 몸을 덮었다. 하늘에서 받던 햇빛보다 이곳의 햇빛은 더 다정했다. 새들이 묻혀오는 흙내음과 사뭇 달랐다. 이질적인 다정함에 장로는 잠깐이나마 안식을 취한다.
반가움도 잠시, 그곳에 히비의 흔적은 없었다. 장로의 짧은 탄식에 나무도 독수리도 숨을 죽인다. 장로는 달큼한 기운에 잠시라도 취했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억겁의 시간을 향해 눈을 감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니, 몸 중앙에 있던 푸른빛이 가지를 뻗듯 온몸에 퍼지며 햇빛에 닿자 발광한다. 치맛자락의 형상을 한 우산이 두둥실 부풀기 시작했다. 언제나 산새들의 지저귐과 나무의 말소리가 만연한 숲속, 그 순간만큼은 신비로운 고요가 가득 채워진다. 모든 자연이 장로를 주시한다. 인간이 이 모습을 봤다면 숲속의 천사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퍼졌을 것이다. 장로는 천천히 부푼 치맛자락을 가라앉히니, 몸이 부드럽게 유영하듯 떠오른다. 다시 한번, 부풀고, 가라앉고, 다시 또 부풀고, 가라앉고, 그렇게 대지가 떠밀 듯 천천히 하늘 위로 떠오른다. 장로의 우아하고 차분한 동작들엔 확고한 목표가 있다.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넘어서자, 공중 한 가운데 멈춘다. 만물을 스치는 바람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나무를 스치고 그곳에 정착하는 새들, 다람쥐, 곤충에 유충들까지. 바람이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스쳐오는 바람에 천천히 간절함을 불었다.
나린아 하나가 사라졌답니다 . 인간들의 욕심이 만든 고철 덩어리 탓에 말이죠 . 분홍빛을 띠는 사랑이 가득한 아이입니다 . 부디 발견한 이가 있다면 내게 데리고 오세요 .
“나린아가 사라졌대! 그것도 인간들 때문에!”
소식은 금세 새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하늘의 빛을 다스리는 나린아는 새들에게 섬겨야 할 존재였다. 그 존재의 실종은 최고의 화젯거리이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특히 불행한 일일수록 더욱 자극적인 재밋거리.
평소였다면 이런 소문에 내켜 하지 않았을 장로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간절함이 체면을 넘어서게 했다. 찾아낼 수만 있다면 감내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감내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아무튼 장로는 믿기로 했다. 새들의 가벼운 부리를, 그들의 빠른 발걸음을.
장로는 기다렸다. 히비를. 어쩌면, 붉어진 하늘을.
세면대 위로 증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뜨거운 물이 쏟아지며 희미한 안개가 브리의 볼을 스친다. 놀란 브리는 허겁지겁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잠그려 한다. 그 순간, 증기 사이로 아른거리는 분홍빛이 눈을 사로잡는다.
히비의 시들었던 몸이 증기를 머금고 다시금 부풀어 오른다. 말라가던 피부에는 생기가 돌고, 분홍빛은 점차 선명해지며 반짝인다. 마치 맑은 물 위에 떨어진 색의 생명력처럼, 피어나는 빛이 꽃이 되는 듯, 석양이 퍼지는 듯 퍼진다.
브리는 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히비를 작은 손으로 들어 올린다. 말캉한 촉감, 부드럽고 따뜻하다. 감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끝에 차가운 물이 찝찝하게 스며들자 그제야 넘치는 세면대 물을 눈치챈다. 허둥지둥 수도를 잠그며 물러서지만, 그 순간—히비의 몸이 작게 옴짝거린다. 박동이 점점 커져 피부를 통해 확실히 느껴진다. 그러더니, 후련한 숨소리와 함께— 작은 눈이 번쩍, 뜨인다.
히비는 도르륵 눈을 굴리며 주변을 파악하기 바빴다. 눈동자는 우주처럼 깊고 어두웠지만, 빛을 머금은 까만 보석 같았다. 흰자가 없는 까만 눈은 아무리 굴려도 티가 나지 않았다.
눈앞에는 자신보다 몇 배는 커다란, 하지만 앳된 얼굴을 한 인간 아이가 있었다. 자신을 받치고 있는 손은 작고 물렁하며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포근했다. 인간을 마주한 건 처음이지만, 어째서인지 경계심은 들지 않았다.
그때, 아이가 눈이 휘어지도록 환하게 웃었다.
“깨어났구나!”
커다란 목소리에 히비는 펄쩍 놀라 뛰어올랐다. 너무 높이 솟구친 탓에 천장에 머리를 박고는, 이내 브리의 손바닥 위로 다시 착지했다. 브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쿡쿡 웃어댔다. 손안의 히비를 떨어뜨리지 않으려 손을 고정한 채로.
“미안해. 놀랐지? 네가 깨어난 게 너무 기뻐서 그만. 나는 브리라고 해. 숲에서 네가 천사처럼 내려오는 걸 봤어. 깨어나지 않아서,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 무서웠지?”
브리의 웃음은 아이 같았지만, 말을 건네는 어조에는 안심을 주는 믿음직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히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파랗고 부드럽던 구름 위는 온데간데없고, 딱딱한 타일 벽과
푸른색 바닥, 붉은빛이 감도는 나무 문, 그리고 작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만이 공간을 채운다.
그 햇살은 거울에 반사되어 히비의 눈을 사냥감처럼 괴롭혔다. 눈이 시려 바라본 곳, 습기 낀 거울 속에는 분홍빛을 머금은 한 나린아가 있었다. 다른 나린아들보다 작고, 자신의 분홍빛을 머금은 모습. 그리고, 인간 아이의 손 안에 살포시 안겨 있다.
히비는 촉수를 뻗어 브리의 볼을 살짝 만졌다. 그러자 거울 속의 나린아도 인간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몸을 살짝 부풀리자, 거울 속의 자신도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자신이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걸까, 아니면 여전히 꿈속이라 믿는 걸까. 히비는 거울 속의 낯설고 신비로운 자기 모습에 한동안 멍하니 빠져들었다.
히비는 부풀린 풍선처럼 몸을 크게 부풀린 채, 거울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이를 눈치챈 브리는 히비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고 싶어 조심스레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찰박, 찰박. 세면대에서 넘쳐 흐른 물 위로 발이 미끄러진다. 브리는 중심을 잃고 휘청, 양발을 정신없이 굴리며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 와중에도 히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다.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 헛디디는 발놀림은 마치 작은 서커스 단원 같다. 몇 번의 위기를 넘긴 끝에, 한쪽 무릎을 꿇고 히비를 두 손으로 높이 치켜든다. 어딘가 라이온 킹의 명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히비는 여전히 브리의 손 위에 안전하게 있었다.
문제는 그 위치였다. 히비가 바쳐진 곳은 거울 바로 앞, 그리고 물이 넘칠 듯 가득 찬 세면대 위였다.
히비는 자신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눈앞의 거울 속 자신에게 몰입해 있었다. 낯설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촉수를 움직이고 몸을 빙그르르 말아본다. 고요한 구름 위에서 갈피를 잃던 몸짓들과 다르게, 지금의 히비는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분홍빛을 품은 자신. 다른 나린아와는 다른 자신. 거울 속 존재는 자신이고, 자신은 바로 그 존재였다. 그것이 어쩐지 기쁘고, 신기하고, 조금은 무서웠다.
하지만 거울을 따라 움직이던 눈빛은 이내 불편함을 느꼈다. 김 서린 거울이 점점 흐려져 자신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습기 어린 공기가 피부에 스미는 듯 싶더니, 아랫배에 퍼지는 묘한 따뜻함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세면대에, 물이. 아주 많이. 넘치기 직전까지 고여 있었다.
그제야 위기의 순간을 깨달은 히비는 재빠르게 반응했다.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그대로 브리의 머리 위로 점프! 그 작은 몸으로 머리카락을 붙잡고는 마치 암벽 등반하듯 기어오른다. 휘청거리는 브리의 머리를 온몸으로 꼭 끌어안았다.
머리에 착 달라붙은 히비는 꼭, 물에 빠질 뻔한 작은 원숭이처럼 보였다. 그 재빠른 몸짓에 브리는 한참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둘은, 위기를 피하는 방식마저도 닮은 것 같았다.
브리는 히비가 물을 무서워한 건 아닐까 걱정이 몰려왔다. 혹시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건 아닐까. 겁을 먹고 자신을 오해하면 어쩌지—하는 불안에 도리어 겁을 먹는다.
설렘 한 스쿱, 걱정 한 스쿱, 기쁨 한 스쿱, 당황 한 스쿱. 감정이 겹겹이 쌓여 아슬아슬 넘칠 것 같은 마음이, 잠시의 안도 끝에 다시 불안으로 터지려 한다.
그러나 정작 히비는 물에 대한 두려움은커녕, 금세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푹 빠져 있다. 이번에 관심이 닿은 곳은 거울 속 브리였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탓에 시선은 휙휙 바뀌고, 물에 빠질 뻔한 일은 히비의 관심사 바깥이다. 어쨌거나 빠지지 않았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브리의 손은 깃털 없이도 따스했다. 머리 위엔 구름처럼 몽글몽글한 머리칼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 우주처럼 짙은 눈이 호기심 가득히 히비를 바라본다. 아까 처음 봤던 브리의 입꼬리엔 기러기에게서 들은 ‘사랑’이 넘실거렸는데, 지금은 축 처져 있다. 듣기만 해선 이해하지 못했던 그 사랑이, 보고 싶어졌다.
히비는 조심스레 촉수를 뻗어 브리의 양 입꼬리를 쭉 잡아당겼다. 광대까지 힘껏 당겨졌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아니었나. 다시 입을 잡아당기며 살폈지만, 바들거리는 근육 떨림만이 전해졌다.
브리가 무언가 말하고 있다. 히비는 머리 위에 매달린 채 얼굴을 내밀어 브리의 눈앞에 바싹 다가간다. 말캉한 피부가 브리의 코끝에 닿고, 그곳에서 하늘의 청량한 향기가 풍긴다. 호기심이 더해진 히비는 사랑을 샅샅이 찾아내려 한다.
하지만 히비는 브리, 그러니까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낮고 울리는 말소리는 어쩐지 비행기가 지나갈 때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브리의 눈에 고인 물방울이 빛을 반사하자,
히비의 눈엔 그 눈동자가 달빛처럼 영롱해 보였다. 아까의 사랑과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무언가였다.
그 기운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제야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는 도우려고 했어. 미안해.
브리의 말이 언어로 들리기 시작한다. 말은 이해했지만, 뜻은 아직 완전히 와닿지 않는다.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히비는 입안 가득 바람을 넣고 굴린다. 바람이 입 안의 공간을 밀어내며 혀처럼 말아진다. 인간의 언어를 흉내낼 수 있도록 구강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로가 늘 하던 대로, 히비는 촉수를 뻗어 브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하늘이 아직 푸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