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새벽, 사랑은 남았다

평온이라는 말을 배운다

by 기록하는여자

포항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흔들림을 견딘 시간이었다. 자연의 진동과 내면의 떨림이 포개졌던 나날들. 2020년 여름, 나는 15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포항을 떠났다. 그러나 그 땅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아이를 품은 엄마로서 맞이한 지진의 순간들은 아직도 내 마음 한가운데, 무언의 울림으로 남아 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포항에서 규모 5.5의 강진이 일어났다. 기상청 관측 이래 경주 지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지진이었고, 진원의 깊이가 얕아 체감 진동과 피해는 훨씬 더 컸다고 했다. 그날, 평범한 하루였다. 남편은 출근했고, 여섯 살 아이는 유치원에 갔고, 나는 평소처럼 청소를 하며 집안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가을빛이 따사롭게 들던 오후, 거실 책장 앞에 앉아 중고 전집의 먼지를 털며 지인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통화가 끊겼다.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에서는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동시에 집안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가구나 물건이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파트라는 건물 자체가 좌우로 크게 출렁이는 듯한 공포. 열어두었던 발코니 창문이 창틀과 부딪치며 흔들렸고, 스탠드 에어컨이 쓰러질 듯 휘청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에어컨을 붙잡았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이게 아니라, 내 아이인데.'

거실 한가운데로 몸을 피한 뒤, 맨 처음 든 생각은 '우리 용용이!'였다. 유치원에 있는 아이를 빨리 데리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재난 상황에서 전화는 무용지물이라는 걸 경주 지진 때 이미 배운 터였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 샴푸를 손에 덜었다. 머리에 거품을 문 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왜 그 상황에서 나는 머리를 감았을까. 공포와 불안이 만든 무의식의 행동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도로는 이미 정체 상태였다. 평소 5분이면 도착하던 유치원에 20분 넘게 걸려 겨우 도착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선 아이들이 선생님 손에 이끌려 부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딸아이도 그중 하나였다. 너무 늦게 도착한 게 미안해서, 너무 놀랐을 아이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용용아, 엄마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지진이 일어나던 그 순간, 딸아이는 영어 방과 후 수업을 막 시작하려던 중이었다고 한다. 건물이 흔들리자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운동장으로 대피했고, 진동이 멈춘 후 선생님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신발과 가방, 외투를 챙겨주셨다고 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날 남편은 또 당직이었다. 우리는 13층에 살고 있었고, 여진에 대한 두려움에 저층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나는 덜 무서웠을까. 그러나 그 어떤 재난 앞에서도 엄마는 아이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지진 이후, 나는 소리와 진동에 과민해졌다. 위층에서 쿵 소리가 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화재 경보음과 재난 문자는 나를 얼어붙게 했다. 그리고 인사말도 바뀌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대신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불안이 내 언어마저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2018년 2월 11일. 새벽 5시 3분. 또 한 번의 강한 흔들림이 우리 가족을 덮쳤다. 이번엔 규모 4.6의 여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시간, 암전 속에서 건물이 요동쳤고, 붙박이장이 삐걱거렸다. 남편은 딸을 끌어안았고, 나는 그 순간, '이게 죽음의 순간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공포를 느꼈다.

옷을 챙겨 입고 급히 계단으로 대피했다. 남편은 딸아이를 번쩍 안고, 계단을 뛰듯 내려갔다. 나는 따라가며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보다 아이를 먼저 안은 남편이 서운했던 건지, 그런 내 마음이 부끄러웠던 건지 모르겠다. 대피로엔 자전거, 유모차, 잡동사니들이 가득했고, 그것들이 우리 가족의 대피를 방해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 이기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절감했다.

대피한 사람들로 가득 찬 아파트 단지. 모두가 차 안에서 밤을 보내거나 추위 속에 떨고 있었다. 그날, 나는 또다시 욕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았다. 패닉 상태에서 무언가 '정상적인 일상'을 흉내 내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내 얼굴을 본 남편이 말했다. "당신, 왼쪽 눈이 좀 이상한데?" 왼쪽 눈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병원에서는 결막하출혈이라 했고, 지진 당시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혈압 상승이 원인이라 했다.

지진은 건물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도 함께 금이 가고 부서졌다. 한동안 나는 문 앞에 비상 가방을 준비해 두었고, 윗집의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도 움찔했다. 지진 이후 나는 펜트하우스나 고층 건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이제는 여행을 가서도 호텔의 고층 오션뷰를 배정받기 위해 더 이상 추가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다. 윗집의 안마의자 진동도 무시할 수 있게 되었고, 작고 가벼운 지진엔 눈썹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오늘 하루 어땠어요?"라고 묻기보다, 조용히 기도하듯 말하곤 한다.

"평온한 하루였기를."

지진이 내게 남긴 것은 트라우마만이 아니었다. 매일이 기적이고, 오늘이 고맙고,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축복이라는 걸, 나는 매 순간 더 깊이 깨닫는다.

삶이 흔들려도, 사랑은 결코 무너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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