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밤, 아이를 품다

낯선 떨림, 처음 맞는 두려움

by 기록하는여자

살면서 몇 번의 지진을 겪었다. 그때마다 가슴속 어디쯤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시간이 흘러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속엔 아직도 흔들림이 남아 있다. 지진은 단지 땅만 흔든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일상, 감정,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로서의 책임감까지 깊게 흔들어 놓았다.

생애 첫 지진이라고 말하긴 어딘가 어색하지만, 몸으로 처음 느낀 지진은 2016년 7월 5일 울산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이었다. 그날은 남편이 당직 근무로 집을 비운 밤이었다. 나와 다섯 살 아이, 둘만 있는 조용한 저녁. 경북 포항의 집 안, 모든 불을 끄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 잠자리에 누웠다.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지만,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닥 어딘가에서부터 올라오는 낮고 둔탁한 떨림이 내 몸을 휘감았다. 5초 남짓 이어진 그 미세한 진동은 너무도 낯선 감각이었다. 빨래 건조대에 걸린 옷이 좌우로 흔들리고, 천장의 조명도 가볍게 떨렸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하얘졌고,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숨결을 느끼며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이는 흔들림을 느끼지 못한 듯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다. 곧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당직 근무 중이던 그는 서서 움직이고 있어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휴대폰에 도착한 긴급 재난 문자. "2016년 7월 5일 20시 33분, 울산광역시 동구 동쪽 해역 52km 지점, 규모 5.0 지진 발생." 경보음에 다시 한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날 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불안과 긴장이 덩어리처럼 가슴에 내려앉아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본 지진의 떨림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 할 무게, 그리고 '내가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한순간에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였다.

'여진'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그때, 나는 자연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그 무력함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엄마의 마음을 처음 마주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다시 한번 지진은 우리 삶을 찾아왔다.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5.1의 전진과 5.8의 본진이 이어졌다. 그날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평범했던 저녁,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식탁을 벗어나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놀고 있었다. 갑자기 식탁 위 그릇들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머리 위 조명이 크게 흔들리고, 아파트 전체가 좌우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미 울산 지진을 겪었던 터라 침착한 척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다행히 크게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당황했고, 식사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밤공기는 제법 서늘했고, 우리는 산책하듯 집을 나섰다. 근처 팬시점에 들러 물건을 구경하던 중, 다시 한번 흔들림이 시작되었다. 진열된 물건이 떨리고, 천장 조명이 덜컥거렸다. 남편은 딸아이를 번쩍 안고 출구로 뛰어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발밑이 흔들리고,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굳어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남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가게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과 함께 땅속에서 울려오는 천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재난 문자 경보음이 동시에 울리며 공포감은 절정에 달했다. 그 순간, 아이를 품에 안고 출구를 향해 달려간 남편과,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하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엄마라는 이름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남편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 자동차 키를 가져왔고, 우리는 차에 올라 잠시 머물렀다. 딸아이는 뒷좌석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감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작은 몸이 힘없이 늘어진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아이는 작은 흔들림에도 불안해했고, 나 또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진은 며칠 동안 계속됐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집안의 작은 소리에도 긴장했다.
지진은 단지 땅을 흔든 것이 아니었다. 나의 내면을, 엄마로서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깊이 흔들어 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품게 되었다. 지진은 두려웠지만, 아이를 품에 안은 그 밤,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마음 하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짐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 고요히 울린다.

바람 한 줄기에도 몸이 움찔하는 밤,
나는 다시 아이의 옆에 눕는다.

그 밤의 떨림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엄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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