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나를 살아내기로 했다

삶의 터전은 결국 내가 선택한 태도였다

by 기록하는여자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이 나의 모든 기준이었다.
높은 건물, 바쁜 인파, 익숙한 지하철 냄새까지.
나는 서울의 리듬을 타고 자란,
진짜 '서울 촌년'이란 말이 나에게 딱 어울렸다.


반면, 남편은 포항 사람이었다.


바다 냄새가 스며든 공기, 낮은 건물들,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는


누가 봐도 '포항 촌놈'이었다.


그런 우리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지극히 우연했던 연결이었다.


군대에 간 친구와의 통화 속,

무심코 들려온 한 사람의 이름.

친구의 장난 섞인 말 한마디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였던 우리는

어느새 하루하루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의 일상에 기대고,

말의 리듬과 침묵의 온도에 익숙해졌다.


서울과 포항.

공항과 터미널을 오가며

우린 수없이 헤어지고,

수없이 다시 만났다.


4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의 끝에서

우리는 결심했다.

2005년 가을,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나는

남편이 있는 포항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의 고향이자, 그의 부대가 있는 곳.

군인의 아내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떻게 연고도 없는 그 먼 곳으로 가?"

서울에 남은 친구들은 내게 물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 뭐.

외국 가는 것도 아니고,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지금 돌이켜보면,

참 철없는 말이었다.


포항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택시 기사님의 사투리도,

식당 아주머니의 억양도,

내겐 전부 낯설고 거칠게만 들렸다.


심지어 한 번은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말투에

괜히 상처받아 따졌다.

"아저씨,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내가 언제 화를 냈는겨?"


지금 생각하면 웃픈 기억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도, 동네도, 사람도

모두 낯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웠다.


밤마다 눈물을 베고 잠들었고,

남편이 당직이나 훈련으로 집을 비우면

나는 서울로 도망치듯 향했다.

친정, 친구, 지인들...

내가 아는 공기와 빛이 있는 곳으로.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저녁 무렵, 퇴근한 남편을

반가이 맞아주는 친구의 모습.

그 평범한 풍경 속에서

문득 내 마음에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왜 내 삶을 자꾸 떠돌이처럼 만들지?
나는 왜, 나의 가정에 뿌리를 내리지 못할까.
너, 노력은 해봤니?'


그날 이후,

서울행을 멈췄다.

도피하듯 떠났던 발걸음을

조용히 거두었다.


도망치지 않기로,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진짜로 살아보기로.


시간이 흘렀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포항은 조금씩 익숙한 도시가 되었다.


정겹게 들리기 시작한 사투리,

탁 트인 바다,

막힘없는 도로에서 느끼는 여유.

무엇보다,

내게 따뜻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포항에서의 15년은

나를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2020년, 남편의 전출로

또 다른 도시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때는 이상하리만큼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이제는 안다.

삶은 장소나 사람이 결정짓는 것이 아니란 걸.

어디에 있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나의 삶이 되고,

나의 집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제 믿는다.


결국 삶은,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된다는 것을.


그곳이 어디든,

마음이 평안하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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