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연날리기

실을 놓는 순간, 사랑은 더 멀리 난다.

by 기록하는여자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생일을 맞이하던 날.
처음으로 휴대폰을 손에 쥐여주었다.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창문을 아이 손에 건넸을 때,
나는 보이지 않는 실 하나를 또 아이에게 내어준 기분이었다.

처음엔 두려웠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자유를 건네는 일이,
어쩌면 내 손에서 뭔가를 잃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어떤 앱을 써야 할까, 어떤 기준으로 아이의 사용을 도와야 할까.
고민 끝에 '구글 패밀리 링크'를 선택했다.

이 앱은 만 13세 미만의 아이 스마트폰을 부모가 함께 관리할 수 있게 돕는다.
사용 시간도, 설치할 수 있는 앱도 부모가 승인해야 하는 시스템.
처음엔 안심이 되었다.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닿는 곳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앱에는 기한이 있었다.
아이 나이 만 14세.
즉, 중학교 2학년이 되면 더 이상 부모는 아이의 기기를 관리할 수 없다.
그 시점부터는 아이 스스로가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구조였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은 놀랐고,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아직은 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내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의 독립은 가까이 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잡고 있었는데, 아이는 이미 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아이가 일곱 살 무렵,
우리는 울산 간절곶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었다.
그날의 바람은 강했지만 맑았다.
아이와 남편은 연을 들고 바닷가를 이리저리 뛰었다.

연이 몇 번이고 고꾸라졌다.
땅바닥에 몸을 찧고 구겨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은 연줄을 다시 매만지고,
아이의 손에는 어느새 익숙한 끈의 감각이 자리를 잡았다.

마침내 연이 바람을 타고
파란 하늘 위로 천천히, 그러나 힘 있게 날아오르던 순간.
나는 그 장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육아 같았다.

처음엔 바람의 방향조차 잘 읽지 못한다.
아이도, 부모도 어설프다.
때로는 거센 바람에 휘청이기도 하고,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면
어느 순간 연은 스스로 균형을 잡고
높이, 더 높이 날아오른다.

그럴 때 부모는
실을 하나씩 풀어주며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결국엔 손에 쥔 실마저도 놓아야
연은 자유롭게, 바람 따라 더 멀리 날 수 있다.

육아도 그렇다.
도와주되, 결국은 놓아주는 것.
그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보다 먼저 독립을 배워야 한다.
잡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며,
스스로의 손을 천천히 펴는 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쥐려 했던 손에서,
진짜 사랑은 실을 놓는 데 있다는 걸 알아가는 시간.

그런 의미에서
'구글 패밀리 링크' 아이콘이 끊어진 연 모양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마치 말하는 듯하다.
"이제, 놓아줄 시간입니다."

그 말이 섭섭하면서도 아프지 않은 건,
그동안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까.
나는 알고 있다.
그 연은, 그 아이는
내 손을 떠나도 결코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는 걸.

육아는 아이를 위한 여정 같지만,
사실은 부모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여행이기도 하다.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인 셈이다.
자녀의 독립은 곧
부모가 자녀에게서 천천히 물러나는 일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 여정을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쥔 얼레의 실을 조금씩 풀며 준비하고 있다.
아이가 언젠가 바람의 방향을 스스로 읽고,
자기만의 하늘을 찾아
두려움 없이 날아갈 수 있도록.

그러니, 사랑하는 아이야
높이 날아라.
뒤돌아보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엄마는 늘 바람 아래에서 너를 응원하고 있을 테니.

육아의 끝에서, 나는 아이의 독립이 아닌
내 마음의 독립을 연습하고 있다.
바람 속에 흩날리는 실처럼,
사랑은 끝내 손을 놓는 데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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