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시간, 아이를 키운 날들
함께였던 시간의 끝에서
지난 6년 동안, 아이와 나는 한 교실 안에 있었다.
그 교실은 아이와 내가 나란히 앉은 두 개의 의자와 책상이 놓인 거실이었고,
칠판 대신 작은 부기보드와 하얀 연습장이,
낡아진 문제집이 있었고
종이 냄새 대신, 간식 냄새가 은근히 퍼지던 곳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우리는 사교육 없이 공부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간식을 내주고,
수학과 영어를 함께 풀었다.
때로는 같은 책을 읽었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내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이 싫지 않았다.
이 여정은 아이가 일곱 살 가을에 시작됐다.
유아기에 가정방문 학습도 시키지 않았던 나는
그때부터 수학과 영어를 함께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아이와 나는 계획을 세우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아마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 선택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아빠와 주말에 가끔 수학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규칙도, 일정도, 학년에 맞춘 흐름도 없었다.
그저 '간간히' 하는 공부는 내게 맞지 않았고,
그래서 아빠와의 공부 시간은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공부할 때
항상 '맞는 시기와 방법'을 고민했다.
아이가 배우기 전, 나는 먼저 예습했고
영상 강의를 찾아 이해를 돕는 자료를 만들었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를 잃지 않도록
내 마음의 에너지를 쏟아냈다.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울컥했지만
공부에 대한 좋은 기억만은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방학 전날,
아이가 불쑥 말했다.
"엄마, 나도 이제 영어학원에 다녀보고 싶어."
친구들이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곳에서의 공부 방식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나는 잠시 멈춰 생각했다.
늘 '아이가 원할 때 학원에 보내자'는 마음을 지켜왔으니,
그 결정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직접 경험해 보자."
그 겨울, 아이는 영어학원에 다녔고
새 학기부터는 수학학원에도 등록했다.
엄마표 학습은 그렇게 조용히 끝이 났다.
막연히 중학교 1학년까지는 이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한 계절 앞당겨 끝을 맞았다.
나는 대견함과 아쉬움이 함께 밀려왔다.
학원 생활에 잘 적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쌓아온 공부 습관과 긍정적인 정서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얼마전, 수학 학원 선생님과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혼자만의 졸업식을 가졌다.
'이렇게 이제 한 장을 덮는구나.'
6년이라는 시간을 접어 책갈피에 끼우듯,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엄마표 학습은 아이를 위한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면 나를 키운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 6년 동안 부모로서 배웠고,
아이와 함께 자랐다.
그 시간들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 속
가장 반짝이는 챕터로 남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빛날 수 있도록,
멀리서 바라보며 믿어주고,
필요할 때 조용히 곁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의 이 장면이
아름답게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참 잘 걸어왔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