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선택을 믿는 법

좋은 부모란, 아이의 삶에 끼어들지 않는 사람

by 기록하는여자

잠들기 전이면 어김없이 내일 입을 옷부터 가방, 신발까지 준비하던 아이였다.
공주 드레스를 입을지, 편안한 바지를 입을지.
엘사 운동화를 신을지, 반짝이 구두를 고를지.
심지어 어떤 양말을 신을지도 스스로 정하곤 했다.

그 작은 손끝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이미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키워가고 있구나.

그래서 아이가 크든 작든 선택할 기회를 자주 주려 했다.
다음날 유치원에 어떤 옷을 입고 갈지,
외식을 할 때는 무엇을 먹을지,
심지어 가족끼리의 작은 규칙조차 놀이처럼 함께 정했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네 차례엔 네가 고르기. 대신 다른 사람이 고른 것도 기꺼이 먹어야 해."

그렇게 우리는 돌고 도는 선택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는 순간들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랐다. 그 경험들이 아이 마음속에 '나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남기를.
그 믿음이 언젠가 작은 자존감의 씨앗이 되어 자라나길 바랐다.

나는 안다.
자신의 감정과 삶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감각은,
어릴 적부터 자주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큰 차이를 만든다.
그 감각은 삶의 만족감이 되고, 결국 행복감이 된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믿음을 가진 아이는 어떤 순간에도 다시 자기 길로 돌아올 수 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반장 선거에 나갔고, 기자단에 도전했고, 방송반까지 해냈다.
점점 눈에 띄게 커져가는 자신감이 대견했다.

어떤 친구를 사귈지도 스스로 결정했다.
학원을 고를 때는 위치와 거리, 수업 분위기까지 비교표를 만들더니, 며칠을 고민한 끝에 말했다.

"엄마, 난 이 학원으로 갈래."

그 순간, 나는 울컥했다.
나보다 더 철저하게 계획하고, 생각보다 더 단단하게 결정하는 그 모습에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리고 지금, 중학생이 된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아... 공부하기 싫어. 그래도 해야 해. 난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할 거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또다시 깨달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인생을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아이가 되었구나.
그 마음의 단단함이야말로 '내 인생을 내가 산다'는 증거였다.


나는 아이를 보며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아이가 자기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면, 부모인 나 역시 내 인생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보여줄 때, 아이도 자기 삶을 사랑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아이의 삶에 불필요하게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부모가 되겠다고.
걱정은 속으로 삼키고, 믿음은 말로 전해주겠다고.

"용용아, 엄마는 네 결정을 믿어.
너는 분명 잘 해낼 거야."


좋은 부모란 아마도,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려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서서 기다려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을 먼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아이의 삶을 믿어주는 일은 곧 내 삶을 믿어주는 일.
결국 우리가 함께 배우는 건, '나답게 살아가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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