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 속에서 울었을 당신을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 아껴 보고 애정하던 만화책 시리즈를 용돈을 모아 몰래 사다가
파란색 종이 수납 상자에 넣어 책상 밑에 보관했었다.
(그 만화는 '꽃보다 남자'였을 것이다)
고향집 책상 아래 그 파란색 박스가 자리잡고 있던 어느 해 여름, 큰 비가 와서
친정집에 물이 들이찼고
나의 그 침수의 기억은 나의 파란색 박스 안에 있는 만화책이 쭈글쭈글 젖어버린 것 정도로 기억된다.
몇 해 전.
어느덧 아이가 두 명이고 부모가 된 우리의 삶 속에 큰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온다고 걱정은 했으나, 그게 동네의 천이 범람할 정도라고는 여기지 못했고
약간의 불안을 달래고자 그 밤. 신랑과 맥주도 한 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늘에서 비가 쏟아붓던 밤.
우리는 쉬이 잠이 들지 못하고, 자정이 넘어 내다 본 골목은 이미 물이 꽤나 들이찼다.
현관에서 종종거리다 스카치테이프를 들고서 현관문 테두리를 따라 붙이는 나를 보고서 신랑이 코웃음을 쳤던 것도 같다.
(나는 그 코웃음의 이유를 얼마후 절실히 깨닫는다)
비는 속절없이 무섭게 퍼부어댔고
아슬아슬하게 차오르던 현관 밖 물은 집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우리집은 작은 2층 주택이었는데,
위에서 내려보자니 물이 현관에서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곳곳의 틈으로 순식간에 차올랐다.
급하게 내려가 내가 겨우 들고 올라온 것은 전기밥솥. 깨어난 아이들 먹일 밥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물이 차오르면서 역한 냄새가 났다. 아마도 밖에서 유입된 뒤섞인 물이라 그랬으리라.
다행히 아침녘 깨어난 아이들에게는 그 상황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아 보였으나
우리 부부에게는 무척 절망적이었다.
물은 그렇게 차올랐다가, 또 얼마후 빠져 나갔지만
거실과 부엌, 1층 바닥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바깥에 세워뒀던 할부도 채 끝나지 않았던 차는 두 대 모두 이미 잠긴지 오래였다.
우리는 그렇게, 수해를 입었다.
그리고 얼마간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챙겨 1시간 거리에 있는 시댁에 며칠 가서 있는 동안
신랑은 엉망이 된 집을 정리했다.
'물에 잠긴다', '집에 물이 들어왔다' 라는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한_
처리해야 할 잡동사니와 해야 할 수고가 어마어마했다.
바닥을 닦아내고
그릇이며 집기를 닦고
쓸모없어진 것들을 들어내고 버려야하는 일들이었다.
아마도 그런 신랑을 남겨두고 온 나도
혼자서 제 손으로 마련한 작은 집이 엉망이 된 꼴을 감당해야했던 그 날의 신랑도
통화를 하며 울었던 것도 같다.
매년 수해가 되풀이된다.
지형이 바뀌고 기후가 바뀌면서
자연재해는 성실하게 누군가의 삶을 휘저어놓고 만다.
수해 뿐이랴.
건조한 계절의 불난리,
습한 계절의 물난리.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매년 누군가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시큰하다.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그 상실감과 허무함.
생각보다 이 작은 나라는 꽤 커서
그 지역에 가까이 있지 않고서는 그 고통이 체감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슬픔과 절망을 알아봐주지 않는 이들을 원망하는 것은 무척 소모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당면한 문제가 발 밑에서 우리를 빤히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각자 살아내야 하는 일상이 있기에.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고나며
각자 잃은 것의 정도와 겪은 상실감의 크기가 물론 다르겠지만
얻은 것도 분명히 있다고 자부한다.
여전히 비만 오면 불안하게 창 밖을 내다보는 습관이 생겼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무척 커졌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
연락해주고 걱정해준 지인들에 대한 감사,
아이들과 지낼 집이라 걱정하던 차에 소독 봉사를 다녀가주신 사장님에 대한 감사,
구호 물품을 보내주신 단체에 대한 감사.
그리고 어린 시절, 그저 젖어버린 만화책에 대한 아쉬움 정도로만 기억하는 그 비의 기억 속에
부단히 애쓰셨을 나의 어른들에 대한 뒤늦은 감사.
매년 어딘가 불이 나고
또 어딘가에서 물난리가 나서 괜히 마음이 시릴 때
그 곳이 여기가 아니라, 아는 이가 아니라
그저 여기서의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조용히 지극히 소액이지만 마음을 보내고
그들의 삶에 평화와 안녕이 어서 다시 찾아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