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김시습

프롤로그

by 카미노

불이 타고 있었다.




남자는 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책을 들고 있었다.

두껍고 낡은 책이었다. 표지가 손때로 반들거렸다. 열두 살부터 품어온 책이었다.

그것을 불 속에 밀어 넣었다.


타닥.


종이가 말리며 검어졌다.

누군가의 생각이, 누군가의 시간이, 누군가의 숨결이 — 연기가 되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남자는 울지 않았다.


울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끝나 있었다.

전하(단종)께서 폐위되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사흘 전이었다.

그 사흘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세상이 뒤집어졌는데 자기 몸은 그대로 있다는 것이 — 이상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책을 불 속에 넣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저녁 종소리였다. 새 임금(세조)이 왕위에 오른 날의 종소리였다.


세 번째 책. 네 번째 책.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 책들을 열두 살에 처음 받았다. 임금(세종)께서 직접 골라주셨다. 이것을 읽고 크거라 하셨다. 나는 읽었다. 밤마다 읽었다. 임금께서 가르쳐 주신 글자로, 임금께서 물려주신 생각으로 — 이제 임금께서 남기신 책을 태우고 있다.


용서하십시오.

살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책이 남았다.


그는 오래 그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불이 가까이에서 타닥거렸다. 손등이 뜨거웠다. 그러나 손을 거두지 않았다.


스물한 살이었다.


다섯 살에 임금 앞에서 시를 지었다. 열다섯에 성균관에서 가장 글을 잘 썼다. 스무 살에 장원급제가 예약된 삶이었다. 모두가 그에게 미래를 보았다. 그는 그 미래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마지막 책을 불 속에 밀어 넣었다.


불이 한 번 크게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 재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오래, 아주 오래.

그리고 일어섰다.

짚신을 꿰었다. 갓은 쓰지 않았다. 맨상투인 채로 문을 열었다.


봄이 가고 있었다. 꽃도 지고 있었다.

밖에 길이 있었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는 길이. 얼마나 긴지 알 수 없는 길이.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 아무도 없어서 물을 수도 없는 길이.


그는 걷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모든 것을 가졌던 자가 모든 것을 버린 날.

천재가 스스로 광인이 되기로 결심한 날.


그리고 그 선택이 도망이 아니라 — 세상에서 살아남는 가장 치열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날.


그는 이후 16년을 걸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람을 만나고, 또 떠났다.


마지막에 깊은 산속 굴에 혼자 앉아 이야기를 썼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그 이야기가 지금 당신의 손에 있다.


— 1화로 이어집니다 —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