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밥이 될 수 있다
1458년, 전라도. 봄에서 여름으로.
주막이 있었다.
길 옆에 있었다. 오래된 주막이었다. 처마가 낮았다. 기둥이 기울었다. 기울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오래 기운 채로 있으면 — 그것이 그 건물의 모양이 된다. 기운 것이 똑바른 것이 된다.
시습은 주막 앞에 섰다.
안에서 냄새가 났다.
밥 냄새였다. 국 냄새였다. 술 냄새였다. 사람 냄새였다. 여러 냄새가 섞인 것이 주막의 냄새였다. 섞이면 원래 냄새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섞인 냄새가 — 더 깊었다.
배가 고프다.
농부의 집을 떠난 지 사흘이었다. 농부는 떠나는 날 아침에 주먹밥을 쥐어줬다. 말없이 줬다. 시습도 말없이 받았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었다. 말이 있으면 오히려 작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주먹밥은 첫날에 다 먹었다.
이틀을 굶었다.
들어가겠다. 그러나 돈이 없다. 돈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가.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가.
주막 앞에 오래 서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습을 보았다. 낡은 한복이었다. 풀린 머리카락이었다. 맨발이었다.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익숙한 시선이었다. 광인을 보는 시선이었다. 시습은 그 시선에 익숙해졌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 신경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다. 그러나 있는 것이 있다.
무엇이 있는가.
붓이 없다. 종이가 없다. 그러나 — 글이 있다. 글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있다.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것을 꺼낼 수 있는가. 꺼낼 수 있다. 꺼내면 보인다.
시습이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있었다.
중년의 남자였다. 몸이 컸다. 얼굴이 넓었다. 눈이 작았다. 작은 눈인데 — 보는 것이 많은 눈이었다. 오래 장사를 한 사람의 눈이었다. 오래 장사를 하면 사람을 빨리 읽는다. 이 사람이 돈이 있는지 없는지. 밥을 먹을 사람인지 술을 먹을 사람인지. 오래 앉아있을 사람인지 금방 갈 사람인지.
주인이 시습을 보았다.
한 번에 읽었을 것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 배가 고픈 사람. 오래 못 씻은 사람.
"뭘 드리오."
물었다. 내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했다.
왜 내보내지 않는가. 돈이 없어 보이는데 왜 묻는가. 장사꾼은 돈 없는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은 들였다. 이유가 있는가. 모른다. 그러나 물었다. 물었다는 것이 —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습이 말했다.
"밥을 먹고 싶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습니다."
주인이 시습을 보았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놀라지 않았다. 화내지 않았다. 그냥 보았다.
"그럼?"
시습이 말했다.
"시 한 수를 드리겠습니다.“
주인이 오래 시습을 보았다.
시습도 주인을 보았다.
이 사람이 받겠는가. 받지 않겠는가. 모른다. 그러나 말했다. 말하기 전에는 가능성이 없다. 말하면 가능성이 생긴다. 거절당할 가능성도 생기고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생긴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주인이 말했다.
"붓이 있소?"
시습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종이가 있소?"
"없습니다."
주인이 잠깐 생각했다. 그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왔다. 손에 붓이 있었다. 낡은 붓이었다. 끝이 약간 갈라진 붓이었다. 종이가 있었다. 깨끗하지 않은 종이였다. 한쪽에 무언가 적혔다가 지워진 종이였다.
"이걸로 되겠소?"
시습이 받았다.
붓을 잡았다.
붓이다. 오래됐다. 그러나 붓이다. 붓을 잡으면 — 손이 안다. 붓을 잡는 것이 익숙한 손과 그렇지 않은 손이 다르다. 내 손은 붓을 안다. 풀뿌리를 잡는 것보다 붓을 잡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것이 내 손이다.
먹이 없었다.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이 먹도 가져왔다. 오래된 먹이었다. 벼루가 없었다. 주인이 작은 돌을 가져왔다. 물을 조금 부었다. 먹을 갈았다.
돌 위에서 먹을 간다. 벼루가 아니라 돌이다. 붓이 낡았다. 종이가 깨끗하지 않다. 그러나 — 쓸 수 있다. 도구가 완벽하지 않아도 쓸 수 있다. 완벽한 도구가 없어서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쓰려는 것이 있으면 쓴다.
썼다.
빠르게 쓰지 않았다. 느리게도 쓰지 않았다. 써지는 속도로 썼다. 글이 나오는 속도가 있었다. 그 속도를 거스르면 안 됐다. 빠르게 하면 글이 앞서가고 손이 따라가지 못한다. 느리게 하면 손이 기다리다 지친다.
글이 나왔다.
봄 강이 흐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흐른다
모르면서 흐르는 것이 강이다
나도 모른다
나도 흐른다
강은 묻지 않는다
나도 묻지 않겠다
썼다.
붓을 내려놓았다.
이것이 시인가. 시가 맞는가. 형식이 없다. 운율이 없다. 그러나 있는 것이 있다.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낸 것이 있다. 꺼낸 것이 있으면 — 시다. 형식이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안에서 나온 것이 시다.
종이를 주인에게 줬다.
주인이 받았다.
읽었다.
빠르게 읽지 않았다. 천천히 읽었다. 한 줄씩 읽었다. 읽는 동안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표정이 변하지 않는 것이 — 깊이 읽는 것이었다. 표정이 빨리 변하는 것은 표면만 읽는 것이었다.
다 읽었다.
오래 종이를 들고 있었다.
시습은 기다렸다.
받아들이겠는가. 받지 않겠는가. 모른다. 그러나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기다리는 것이 —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기다리지 않으면 상대가 읽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주인이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품에 넣었다.
그리고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상이 나왔다.
잡곡밥이 있었다. 된장국이 있었다. 절인 나물이 있었다. 어제 농부의 아내가 차려준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달랐다. 농부의 집 밥은 — 선물이었다. 이것은 — 거래였다. 선물과 거래는 다르다. 그러나 밥은 밥이었다. 밥이 앞에 있다는 것은 같았다.
시습은 먹었다.
천천히 먹었다. 배가 고팠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면 맛을 모른다. 맛을 모르면 — 먹은 것이 아니다. 몸은 채워지지만 다른 것이 채워지지 않는다.
글이 밥이 됐다.
그 생각이 왔다.
글이 밥이 됐다. 글을 쓰면 밥이 나왔다. 이것이 처음이다. 글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밥을 만든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글이 사람을 움직인다. 사람이 움직이면 — 밥이 나온다. 글이 직접 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글이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이 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 글이 밥이 됐다.
주인이 멀리서 보고 있었다.
시습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시습이 먹는 것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종이를 품에 넣은 채로 —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가. 모른다. 그러나 시를 품에 넣었다. 품에 넣는다는 것이 —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 가지겠다는 것이다. 가지겠다는 것이 — 그 시가 저 사람에게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다.
글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밥을 다 먹었다.
일어서려 했다.
주인이 왔다.
"잠깐."
시습이 앉았다.
주인이 말했다.
"어디서 배운 사람이오?"
시습이 대답했다.
"성균관에서 배웠습니다."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글을 많이 아시겠네."
"조금 압니다."
주인이 시습을 보았다.
이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가. 모른다. 그러나 묻고 있다. 묻는 것은 —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원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 주고받는 것이 생긴다.
"오늘 하루 더 계시겠소?"
"왜요?"
"저 혼자 읽기엔 아까운 것 같아서."
혼자 읽기엔 아깝다. 나눠 읽겠다는 것이다. 글을 나눠 읽겠다는 것이다. 글은 나눠도 줄어들지 않는다. 밥은 나누면 줄어든다. 글은 나눠도 그대로다. 오히려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글이다.
"있겠습니다."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이었다.
주막에 사람들이 모였다.
주인이 불렀다. 근처 사람들을 불렀다. 농부도 있었다. 장사꾼도 있었다. 지나가던 나그네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한 자리에 모였다.
주인이 시습을 소개했다.
"이분이 글을 한 수 써줬소. 읽어보시오."
종이를 돌렸다.
사람들이 읽었다.
어떤 사람은 빨리 읽었다. 어떤 사람은 느리게 읽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를 내며 읽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 없이 읽었다.
읽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읽는다.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것을 한다. 다름과 같음이 함께 있다.
농부 하나가 말했다.
"봄 강이 흐른다. — 이 말이 좋소. 그냥 흐른다고 하지 않고 봄 강이 흐른다고 했소. 봄이라는 것이 있어야 강이 더 잘 보이오."
장사꾼이 말했다.
"모르면서 흐르는 것이 강이다 — 이것이 마음에 걸리오. 강이 모른다는 것이 맞소? 강은 아는 것 같기도 한데."
나그네가 말했다.
"강이 알든 모르든 — 흐르는 것은 같소. 아는 것이 흐름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이 시의 말인 것 같소."
저 사람들이 이 시를 읽고 있다. 각각 다르게 읽고 있다. 같은 시인데 다르게 읽힌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보인다. 그것이 글의 힘인가. 쓴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것을 읽는 사람이 본다. 쓴 사람보다 읽는 사람이 더 많이 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글은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읽히는 것으로 이어진다. 읽힐 때마다 다른 것이 된다. 읽힐 때마다 살아있는 것이다.
밤이 됐다.
사람들이 돌아갔다.
시습은 주막 한 켠에 앉아있었다.
주인이 왔다.
"오늘 덕분에 손님이 많았소."
시습이 말했다.
"덕분에 밥을 먹었습니다."
주인이 웃었다.
"내일도 계시겠소?"
시습이 잠깐 생각했다.
내일도 있겠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있어야 하는가. 이유가 있는가.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으면 — 가야 한다. 머무는 것은 이유가 있을 때 머문다. 이유 없이 머물면 — 강물이 고이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내일은 떠나겠습니다."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지 않았다. 붙잡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경우가 있었다. 주인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어디로 가시오?"
"모릅니다."
주인이 웃었다.
"그 시처럼 사시는구먼. 모르면서 흐르는 것이 강이라고 했으니."
맞다. 그 시처럼 산다. 시를 쓰고 나서 그 시처럼 살아진다. 아니면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 시가 나온 것인가.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른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는 것처럼. 그러나 둘이 함께 있다. 시와 삶이 함께 있다.
그 종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이 근처 사람에게 줬다. 좋은 것은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줬다. 읽어보라고 했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줬다.
종이는 손을 탔다.
마을에서 마을로. 길에서 길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종이가 닳았다. 접힌 자국이 생겼다. 그러나 글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글자는 종이가 닳아도 남았다. 종이가 먼저 사라지고 글자가 나중에 사라진다.
북쪽으로 갔다.
한 달이 지났다. 두 달이 지났다. 종이가 한양에 닿았다.
한양이었다.
어느 사랑방이었다.
잘 차려진 방이었다. 비단 방석이 있었다. 좋은 먹과 벼루가 있었다. 촛불이 밝았다.
중년의 관리가 앉아있었다.
손에 종이가 있었다. 낡은 종이였다. 여러 손을 탄 종이였다. 접힌 자국이 많았다.
읽었다.
천천히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오래 있었다.
그러더니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아직 살아있구나."
옆 사람이 물었다.
"누가요?"
관리가 종이를 접었다.
"김시습."
시습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날 시습은 전라도 어느 길 위에 있었다. 걷고 있었다. 해가 기울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앞에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글이 밥이 됐다.
그 생각이 여전히 있었다.
글이 밥이 됐다. 글이 사람을 움직였다. 사람이 밥을 줬다. 글이 또 다른 사람을 움직였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줬다. 글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글은 쓴 사람의 손을 떠나면 — 쓴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 읽는 사람이 어디서 읽는지 알 수 없다. 언제 읽는지 알 수 없다.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다. 쓴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읽히고 있다.
모르면서 흐르는 것이 강이다.
그 말이 들렸다.
자신이 쓴 말이었다.
강은 어디서 읽히는지 모른다. 어디까지 흐르는지 모른다. 그러나 흐른다. 나도 모른다. 내 글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른다. 어디서 읽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간다. 모르면서 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길이 이어졌다.
시습은 걸었다.
그림자가 앞에 있었다.
모르면서 걸었다.
— 15화로 이어집니다 —
다음 화 예고: "기생이 있었다. 이름이 매향이었다. 시습의 시를 읽었다고 했다. '이 시를 쓴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시습이 물었다. '왜요?' 매향이 대답했다. '이 시가 저를 울렸습니다. 왜 울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작품 속 시는 소설적 허구로 창작된 것입니다. 실제 김시습의 작품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