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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하루를 소망합니다.

by yuri

<결혼 못하는 남자>(KBS. 2009)는 일본 드라마가 원작인 작품으로 주인공 조재희는 찌질함과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혼자만의 라이프를 멋지게 즐기는 드라마 속 조재희의 모습을 보면서 "멋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성이 없어 종종 사람들에게 "재수없다"라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과 방식을 밀고 나가는 당당함이 부러웠습니다.


어떤 삶을 동경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벌이나 연예인들의 "화려한 삶"을 동경한다고 말합니다.

예술계통에서 일을 해 공연장 뒤편을 관람할 일이 많았는데 무대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무대 뒤의 모습은 매우 분주하고 치열해집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집니다.


세상살이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부러움이 가득해 보이는 삶이라도 정작 당사자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퀴즈에 GD가 출연해서 "6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고 19살 때 데뷔했다. 연습생 11년, 데뷔 후 활동해 15년 하다 보니 권지용으로 산 게 4, 5년이더라. 20년 넘게 연습생 아니면 지드래곤, GD로 산 거다. 제가 누군지 모르겠더라"라고 고백했습니다. 투어 중 그는 자신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면서 "사랑받고 있고 모자랄 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행복한가? 행복해야 하는데' 싶더라. 정신이 멀쩡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 같았다. 당시 너무 잘 되고 있으니까 위로해 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배부른 소리 하는 걸로밖에 안 보였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니까 저절로 젊어지지 않냐?"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지만 시끌벅적한 학교에서 매일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온갖 소리들로 귀가 아프기 때문에 방학과 주말에는 사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곳에 가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곤 했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봐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온갖 사건을 겪은 후에야 일상의 평온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무난 무난하게 하루 일과를 끝마치면 얼마나 개운하고 뿌듯한 기분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런 날은 퇴근길에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향합니다.


일상이 알록달록하게 다채로운 일로 가득한 것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난 무난한 평범한 삶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따라잡기 위해 매일매일을 허덕이면서 달립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뿌듯함보다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사는가'하는 현타가 옵니다.


<트랜드 코리아 2025>(김난도, 전미영 외 8명, 미래의 창, 2024)에서 선정한 2025년을 대표할 키워드 중 하나가 "아보하"입니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입니다. 특별히 좋은 일이 없어도, 행복한 일이 찾아오지 않아도, 안온한 일상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보하"가 2025년의 트랜드 중 하나라는 말은 그만큼 일상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많이 해줘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어렸을 때는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 사람처럼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책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누군가를 롤모델 삼아 따라 하기보다는 그냥 이 사람, 저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은 이런 점이 배울만 하고, 이런 부분은 반면교사 삼아야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특정 연예인이나 어떤 사람을 좋아하기보다는 그냥 이런 이미지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딱히 누구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보통"이라는 단어를 "특색 없다"와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색 있는 사람들도 특색이 없는 보통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다 특별하면 그게 특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부유한 1%의 사람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명품 시장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보이는 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1%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가 아니라 중간 계층 즉 보통 사람들이 가장 사는 명품 브랜드입니다.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어야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이 더 값지고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아무 일 없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안정된 마음 상태를 가진 그런 날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무난한 삶을 재미없는 삶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재미"만 찾다가 "훅"갈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런 무난 무난한 보통의 하루가 계속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의 삶에도 "아보하"와 같은 날들이 지속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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