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브런치북을 지정하지 않고 업로드를 하는 바람에 다시 올립니다. (내용에 변화는 없습니다.)
※ 잘못 업로드한 글은 비공개처리 했습니다. 죄송하고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지도 교수님께서는 공연차 해외에 방문할 일이 많은 분이셨는데 공연이 끝나면 교수님의 외국인 동료는 "우리나라 노래 말고 너희 나라 노래를 불러줘"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교수님은 "아리랑"을 불러 줬는데, 교수님의 노래를 한참 듣고 하는 말이 "왜 한국 사람들은 아리랑만 불러? 아리랑 말고 다른 노래는 없어?"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단소를 배우고 있다고… 해외에 갈 때는 꼭 가방에 단소를 챙겨가신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대중음악을 K-pop이라고 합니다. pop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대중음악은 지극히 미국스러운 측면이 강합니다.
국악 작곡을 공부했음에도 저는 국악곡을 작곡할 때 정간보가 아닌 오선보를 사용합니다. 퓨전 국악이라고 하지만 잘 들어보면 국악기로 연주하는 서양 스타일의 곡이 대부분입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보는데 에드워드리 셰프는 재미교포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식을 다양한 버전으로 소개했습니다. 반면 한국인 셰프들은 일식, 양식, 중식을 주로 선보이는 모습이 아이러니했습니다. 가장 한국어가 서툰 분이 가장 한국스러운 음식을 많이 선보였으니까요.
<흑백요리사> 포스터
한국인은 유독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입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고,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합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는 남이 가진 것이 더 크고 좋아 보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이 기준이기 때문에 평준화하려고 노력하고, 뭐가 유행한다고 하면 나도 따라 합니다.
혹시 푸른 눈의 외국인이 판소리를 부른다고 하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만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클래식은 우리나라의 국악과 같은 음악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태리 가곡, 독일 가곡을 이탈리아 사람, 독일 사람처럼 잘 불러도 그들의 눈에는 외국인이 판소리를 부르는 것처럼 보일것입니다.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 나라 민족으로서 정체성이 결여된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한식을 세계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외국인들이 한식에 대해 덜 거부감을 느낄까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K-pop, K-drama, K-movie 등이 인기를 끌면서 퓨전화 된 한식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한국의 백반집, 기사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지극히 한국적인 음식 그 자체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죠.
미국은 원래 김을 소비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냉동 김밥 품절 대란이 일어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혹시 애국가 작곡가를 아시나요?
"동해물과~"로 시작하는 애국가는 안익태가 1936년에 작곡한 <한국 환상곡>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곡의 정식 명칭은 '교향적 환상곡 제1번 한국'으로 1938년 아일랜드 방송 교향악단에서 초연을 했습니다.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을 듣고 있으면 갑자기 낯익은 한국말이 들립니다. 분명히 외국인인데 한국어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그가 이 곡을 초연하던 1938년만 하더라고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는 외국인들에게 극히 미미했습니다. 아니 그런 나라가 있는지 조차 몰랐을 수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국인 성악가들에게 한국어 발음 교육을 시킵니다.
<한국 환상곡>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토대로 한 서정적인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은 일제의 탄압하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암울한 모습을 묘사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광복의 기쁨을 맞는 애국가의 합창 부분으로, 안익태는 자신이 작곡한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합창으로 표현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부분은 6.25 전쟁으로 인한 처절한 동족 간의 싸움을 묘사한 부분으로 "무궁화 삼천리 나의 사랑아, 영광의 태극기 길이 빛나라. 금수강산 화려한 나의 사랑아"하고 외치면서 만세 소리와 함께 끝이 납니다.
안익태 <한국 환상곡> 앨범 표지
요즘 K-pop에는 영어 가사가 들어가지 않은 곡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후로부터는 아예 한국어 가사 없이 영어로만 부르는 곡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거나, 마이너리티 한 것을 메이저스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기만 해서는 1등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잘해봐야 2등입니다.
저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오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본질을 잘 지켜야 합니다. 어떤 것이 가장 한국스러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물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으로 대중의 취향에 맞게 조금씩 변형하기 시작하면 본질을 잃어버린 채 변질되기 십상입니다. 장점은 없어지고 비슷한 것들만 양산됩니다.
한 때는 전 세계적으로 홍콩 누아르 영화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홍콩 누아르 영화는 이래야 된다는 공식이 생기면서 비슷한 작품들이 양산되기 시작하고 인기는 점점 식어갔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나다움을 지키면서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안익태는 <한국 환상곡>의 "애국가"만큼은 외국인이 부르던 한국인이 부르던 반듯이 한국어로 부르게 합니다.
에드워드리 셰프는 <흑백요리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버전의 한식을 보여줬습니다.
pop 장르 중에 컨트리와 포크라는 게 있습니다. 이 두 장르는 미국의 역사, 문화, 정체성을 깊이 반영한 음악 장르로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음악 장르입니다.
K-pop에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장르가 뭐가 있을까요?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인기를 끌면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국악을 활용한 K-pop은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있다고 해도 효과음으로 국악기를 사용하고 노래 가사에 국악 리듬을 넣는 정도입니다. 국악이 메인 디쉬라기보다는 디저트나 애피타이저로 사용됩니다.
요즘 한국에서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관심과 인기를 끈 다음 한국으로 들어오는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광주요"는 한국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브랜드로, 처음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통 도자기와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한 제품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한국 역시 "광주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라는 노래도 발매 당시에는 국내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후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외국계 회사에서 일해야지만 "우와"하는 게 아니라 내 나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심도 있는 앎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가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덧붙인 모든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넓게 많이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를 집약적으로 깊게 아는 것 역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남이 가진 것만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p.s 음악 속 경제 이야기는 30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였는데 제 이야기들이 여러분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음악 관련해서 궁금한 이야기가 있으시거나 이런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많은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