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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명해져라: 베르디

by yuri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열렬히 박수쳐 줄 것이다(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when you are actually poop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앤디 워홀은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앤디 워홀의 명언으로 유명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는 학교,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입학 거절을 당했던 학교가 떡하니 여러분의 이름을 학교명에 넣는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세페 베르디입니다.

베르디


1813년 10월 베르디는 북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론콜레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베르디가 두 살 때인 1814년 이 지역을 점렴한 오스트리아 군인들은 이 지역의 주민들을 학살했고 베르디의 어머니는 어린 베르디를 옆구리에 낀 채 밧줄을 타고 종탑에 올라가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음악적 재능은 뛰어났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베르디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 친구 안토니오 바레치는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그가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베르디는 그런 바레치의 호의에 감사해하며 그의 네 딸에게 성악을 가르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모가 남달랐던 그의 딸 마르게리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가난한 무명의 음악가였던 베르디를 사위로 둘 수 없었던 바레치의 아내는 베르디를 밀라노로 유학 보낼 계획을 세우고 그 덕분에 1832년 베르디는 밀라노 음악원 입학을 위한 오디션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정한 입학 연령을 초과한 데다(4세 초과) 피아노 연주 실력은 물론 작곡 능력도 미흡했기 때문에 "음악원에 들어와 공부하는 것보다는 개인 지도를 받는 것이 더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빈첸초 하비다의 문화생이 되어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게 됩니다.




예비 장모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르게리타와 베르디는 1836년 5월 23세의 나이로 결혼을 합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녀 비르지니아와 장남 이치리오가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장남이 태어난 지 1개월 후 장녀 비르지니아는 병에 의해서 생후 17개월 만에 죽게 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장남 역시 병으로 사망합니다. 아직도 그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는지 그의 아내 마르게리타 역시 27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합니다.

베르디는 결혼 생활 4년 만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모두 잃고 자살까지 결의했다고 합니다.

베르디의 아내 마르게리타


다행히 베르디는 아내와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음악에 다시 전념하게 되었고, 이후 그의 경력은 급격히 성장하여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 잡게 됩니다.

여러분이 베르디 오페라 하면 떠오르는 <나부코>, <리골레토> 등이 다 이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베르디의 <나부코>는 구약성서 나부코도노소르 왕의 비극을 오페라로 작곡하고 싶었던 라 스칼라 극장 지배인 메렐리의 요청으로 작곡한 오페라 작품니다.

3막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로 시작하는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19세기 중북부 이탈리아인들에게 통일의 정신과 저항 의지를 불러일으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빌론의 포로가 된 히브리인들이 강제 노동을 하는 중에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부르는 합창으로 히브리인들의 슬픔과 희망이 담긴 래입니다.

이 곡은 발표 당시 이탈리아 민중의 애창곡이 될 정도로 인기를 모고 제2의 국가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베르디는 오페라 <나부코> 성공 이후 <에르나니>처럼 오스트리아 제국의 탄압에 대하여 이탈리아인의 저항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애국적인 작품들을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베르디의 공연이 끝나면 "비바 베르디(viva verdi)"라고 외치곤 했는데 "비바 베르디"는 " Viva Vittorio Emanuele, Re D'Italia(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약자로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부르짖는 구호이기도 했습니다.

즉 베르디 오페라 공연장은 사교 목적을 위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정치 집회 장소로서도 기능을 한 것입니다.


그의 행동이 탐탁지 않았던 오스트리아는 그의 작품들을 검열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베르디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오페라가 아닌 비극적이고 심리적인 주제를 다루는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리골레토>는 이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리골레토>는 꼽추 광대 리골레토가 만토바 공작으로부터 딸 질다를 지키려다가 오히려 비극을 맞이하는 이야기로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은 리골레토가 애지중지하며 키워온 딸 질다를 유혹하고, 공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청부업자 스파라푸칠레를 고용하지만 딸 질다는 공작 대신 자신을 희생하며 죽게 되고 리골레토는 자신의 복수가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깨닫고 절합니다.

<리골레토>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만토바 공작이 여자들을 꼬시면서 부르는 "여자의 마음"인데, 이 곡의 멜로디가 사전에 유출될 것을 염려한 베르디는 성악가에게 초연전까지람들 앞에서 이 곡을 부르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파리 사교계의 꽃인 비올레타와 젊은 귀족 알프레도의 신분을 뛰어넘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축배의 노래"가 유명합니다.


연이은 성공으로 꽤 큰 재산을 모은 베르디는 자신의 재산을 본인을 위해서만 쓰지 않고 독립전쟁을 위한 군자금, 전쟁과 내란, 재해의 피해자들을 위해 쾌척했다고 합니다.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고,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게 된 베르디에게 밀라노 음악원은 학교 이름에 ‘베르디’를 쓰고 싶다고 요청으나 베르디는 "(음악원이) 젊은 나를 원하지 않았으니, 늙은 나를 가질 수 없다"라고 말하며 거절했고 합니다.

베르디


베르디 사망 후 1901년 "밀라노 음악원"은 이탈리아 오페라 거장 베르디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칭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으로 변경합니다.


베르디의 인생을 보면서 사람은 자기 몫의 고난과 슬픔을 온전히 이겨냈을 때 성공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맛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베르디의 어떤 곡을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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