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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09. 2024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

  호모사피엔스는 뇌의 크기가 증가하고 직립 보행을 하면서 골반이 좁아지고 앞으로 기울게 되어 조산아를 출산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포유류 아기의 뇌는 어른의 45%인데 반해 인간은 25% 크기로 태어납니다. 45%가 되려면 엄마의 뱃속에서 21개월을 있어야 하는데 만일 동물과 같이 뇌가 70~80% 자랄 때 출산을 하면 자궁 문이 찢어져 엄마도 죽고 아이도 죽게 되어 조산아를 출산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하죠. 


  우리는 자궁 속에서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밖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에 그때의 결핍욕구를 채우기 위해 생애에 전반에 걸쳐 “사랑”을 갈구합니다. 

 초임 시절에 저를 부단히도 힘들게 했던 여학생이 있습니다.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지만 상담 선생님께 전해 들은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담임이면 내가 학년 부장한테 혼나고 있을 때 나를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담임이라는 사람이 같이 혼나고 있으니..." 아이는 교실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교칙에 위반되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 수많은 상담을 진행했고 늦게까지 교무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아이가 학교로 돌아올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그 아이가 참 버거웠는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 아마도 저에게 “엄마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딸이 버거웠고 혼자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말 잘 듣는 언니와 동생을 챙기기에도 버거우셨던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아이는 가족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더 겉돌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에서 사고를 치는 아이들이 부모나 선생님에게 보인 행동은 ‘내가 이런데도 날 사랑할 수 있겠어?’라는 내면에 ‘사랑받고 싶다’는 기대감이 섞인 질문들이었습니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지 널 사랑해", "네가 이 터널을 잘 지날 수 있게 옆에서 함께 해줄게"라는 답변을 바라는 아이에게 저는 "너만 특별 대우 해줄 수 없어", "왜 이렇게 선생님을 힘들게 하니..."라는 말을 했으니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고 그에 대한 분노로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면 부모는 아이에게 해답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사실 아이는 부모의 해답을 듣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라 "넌 혼자가 아니야", "넌 이상하지 않아"라는 정서적인 지지를 받고 싶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을 많이 할수록 그 조직에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부모가 쉽게 해답을 내려줄 수 있는 건 아이도 그 해답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말을 하는 건 용기를 받고 싶어서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고민을 말할 때는 해답을 제시할게 아니라 말을 줄이고 “잘할 수 있어”라고 응원을 해야 합니다. 


  상담의 팔할은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부모는 해답을 찾아주려고 하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어느새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스스로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가 구하는 만큼 도움을 줄 수 있고, 깨달음은 환자 스스로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는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사람에 하는 말은 잔소리가 되어 반감만 키울 뿐입니다. 

 부모가 듣기에 ‘이건 아니다’ 싶은 말에는 바로 반박하지 말고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화재만 던져주면 됩니다. 스스로 구한 답이어야만 아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자기가 생각해 낸 답은 어떻게든 실행을 하지만 남이 말해준 답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거나, 대충 하는 척만 하다가 안되면 쉽게 포기합니다. 


  유퀴즈언더블럭에 대기업 최초 여성 임원인 윤여순씨가 나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임원이 되어서 일이 재미있고, 열심히 잘하고 싶고 그랬어요. 그때 우리 딸은 3~4학년 될 때인데. "엄마 일 그만두면 안되냐"고 하더라고요. 한참 엄마를 찾을 때잖아요. 어느 날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꿈이 하나 있는데, 자기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미국에서처럼 쿠키 구워서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 들어주는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정말 일하는 20년 세월 중에 최대 고민이었어요. 다른 때, 일로도 어렵고 고민할 때가 많았지만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걸 못 들어주면 아이에게 결핍이 될 것 같은데 내 인생에서 아이를 희생시켜야 하나. 이런 갈림길에서 너무 고민을 하게 됐는데, 왠지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일하면서도 잘 키울 수 있는 마음이 있었고요." "그래서 딸하고 약속을 했죠. 엄마가 시간을 많이 내지는 못해도, 반드시 너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엄마가 그 시간을 꼭 낸다. 그래서 돌아와서 정말 지켰어요. 어떤 때는 회식하고 약간 취해서 왔을 때도 얘기하는 시간을 냈어요. 제가 집에서 주부로 아이에게 전념했을 때보다도 어쩌면 더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녀가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고 내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입니다. 자녀의 말을 많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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