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ri Sep 10. 2024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

  담임을 하면서 학부모님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선생님은 젊으니까 우리 아이랑 말이 잘 통하겠네요…”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건 나이와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포가 얼마만큼 잘 형성되어 있느냐가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느냐, 불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느냐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라포”는 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상호 신뢰관계를 뜻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는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파악해야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자습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교실을 둘러보면서 요즘 학생들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어떤 드라마를 보는지를 유심히 관찰했다가 방학 때 몰아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학기 중에 슬쩍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학생에게 다가가 “선생님도 이 드라마 봤는데…”하면서 친한 척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하라고 하기보다는 보통 하지 말라는 말을 더 많이 합니다. 중·고등학교 시기는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니까 게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녀의 휴대폰을 통제하는 학부모님을 종종 봅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에게 저항할 힘이 없어 내면에 분노를 잠재운 채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사춘기가 오고 힘이 생기는 순간 아이는 본격적으로 부모에게 적대감을 표출합니다. 부모는 예전처럼 아이를 억압하고 누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더 엇나갑니다.


  “다 너를 위한 길이야”라는 명분 하나로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면 언젠가 반드시 아이는 그 분노를 부모에게 어떤 형태로든 표출합니다.  선생님들끼리 흔히 하는 말 중에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로 한동대 법대 교수 김두식 님의 책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사춘기 때 지랄을 하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돼서, 성인 때 못한 사람들은 갱년기에 지랄을 합니다.   


  사람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고 억압할수록 그 욕구는 더 커지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와 많은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 가야 합니다. 무조건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왜 그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게임만 하고 공부는 안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게임을 못하게 하면 게임 생각만 나고 게임을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김정일 정신과 전문의는 잠을 자야겠다고 하면 더 잘 수 없고 오히려 잠을 안 자야겠다고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합니다.(「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지식공작소. 2023)


  무조건 못하게만 할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공부는 지연된 보상이 주어지지만 게임은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게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수록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서 모두 다 전교 1등이 될 수 없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은 휴식시간에는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게임도 공부하듯이 높은 결과를 요구하면 질려서 안 합니다.  

 

  학부모님 중에 게임을 많이 하면 아이의 폭력성이 높아져서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는데 게임과 폭력성 간의 뚜렷한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연구결과는 없습니다. 오히려 게임을 많이 하는 요즘 청소년들은 그 이전 세대들에 비해서 소극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게임은 여학생보다 남학생들이 많이 하는데  교실에서는 여학생들의 기에 눌려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남학생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성장합니다. 재수한다고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1, 2년 사회생활이 늦어졌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좋은 대학 가서 빨리 취직하면 스트레스받는 직장생활을 좀 더 오래 할 뿐입니다.


  아이에게 정답을 알려주려고 하기보다는, 인내하고 기다리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교사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가르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다 보니 교사는 무한 대기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내가 하기보다는 아이가 그 일을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아이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을 강요하기보다는 아이의 입장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모 옆으로 다가와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전 04화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