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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15. 2024

대화하는 법(2)

  대화의 기술을 다룬 책들에서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들어라”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듣고 공감한다는 의미에서 “너만 힘든 것 아니야”, “다 힘들게 살아”, "○○보다는 낫잖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많이 할수록 아이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집니다.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하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흔히 “엄친아”라고 부르는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 붙이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뭐라 말만 하면 “그래서 뭐”, “나도 다 겪어봤어”라고 말하며 아이의 말을 뚝 끊고 본인 말만 하는 부모가 싫어서이기도 합니다.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남들 다하는 고민이고,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고, “다른 누군가보다 우등하다거나 열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현재 상태를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해답을 찾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집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냥 지금의 내 감정을 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해결책을 찾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어서 말을 합니다.


  아이가 무슨 말만 하면 “라떼는 말이야”라면서 본인의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를 하고 “내가 너였으면 더 잘했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와 부모가 뒤바뀐 삶을 산다고 해도 부모가 아이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입니다.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부모의 옛날이야기는 자녀가 듣고 싶어 할 때 들려주면 됩니다. 사람은 들을 준비가 되어있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똑같은 내용을 들어도 어떤 학생은 전교 1등이 되는 반면, 어떤 학생은 전교 꼴찌가 됩니다.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지식공작소. 김정일. 2023)의 저자가 말하길 “정신 치료는 환자가 구할 때 구하는 만큼만 주는 게 최선이다. 그 이상 주면 본능적으로 외면한다. 정신 치료의 성과는 환자에게 달렸다. 의사는 그저 곁에 있어 줄 뿐이다. 정신과 의사는 정보로 치료하는 게 아니라 항상 함께 있어 준다는 믿음으로 환자를 치료한다.”라고 말합니다.

 의사는 경험상 이렇게 하면 환자의 상태가 호전될지, 악화될지 예측이 가능하지만 환자가 의사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가 구하는 만큼만 주는 게 최선의 치료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부모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라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성적이 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고 원만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아이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가 정답을 알려줘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처음 가본 길이라서 무섭고 두려워, 용기를 얻고자 물어보는 것입니다.


  시애틀 종단 연구 결과 20대는 반응속도와 집중력이 높은데, 상황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패기는 있지만 실수가 많은 상태). 하지만 중년이 될수록 해마가 많은 일을 겪으면서 세상에 대한 모델이 정교해져 판단력과 추론 능력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의 행동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철부지나 하는 행동 같아 보이고, 아이가 보기에 부모의 행동은 소시민에 겁쟁이 같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자녀와 대화할 때 “누구는 어땠다는데, 너는 왜 그러냐?”라는 비난을 해서는 안됩니다. “남들 다 똑같아, 너만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섣부른 일반화를 시켜서도 안됩니다. 그냥 “힘들었구나.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며 토닥여주면 됩니다. 그조차도 힘들면 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말하면서 내 생각만이 정답인양 말하는 상사와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내 아이가 내 말을 이렇게 듣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내 상사가 100%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사와의 불쾌한 경험이 쌓일수록 괜히 반항하고 싶어지고, 상사의 모든 말을 거부하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옵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통하는 게 먼저고 그러기 위해서는 입을 다물고 귀를 열어야 됩니다.


  간혹 아이가 실패했을 때 “내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때는 "고생했어… 또 하면 되지"라고 말하면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알고도 모르는 척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것이 대화의 기술입니다. 상대방이 듣기를 거부할 때는 잠시 멈췄다가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대가 나를 피하는데 무리하게 대화를 진행하면 싸움만 일어납니다.


  저희 반 학부모님 중 한 분이 제가 전화할 때마다 아이가 학교에서 사고 친 이야기만 하니 어느 순간 제 전화를 피하셨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가 학교에서 잘한 일이 있으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칭찬을 해달라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하고 있다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셨는지 그 뒤로는 제 전화를 피하시지 않았습니다.


  대화의 핵심은 공감과 존중입니다. 해답을 주려고 하면 싸우게 됩니다. 답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것입니다. 진짜 고민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도 없습니다.


  판단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이의 말에 너무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연예 초반 남자친구, 여자친구한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얘기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이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연인관계였을 때는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듣지만 가족이 된 순간 내 일처럼 반응하게 됩니다. 내 말 한마디에 나보다 더 격하게 화를 내는 배우자를 보고 있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입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떨어져서 이야기를 해야 오래, 깊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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