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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20. 2024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학교폭력이라고 하면 뉴스에 나오는 큰 사건들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실상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생기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서로 대화만 잘해도, 조금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도 생기지 않을 일입니다.

 2026년 대입부터 학교폭력 징계 조치 반영이 의무화되면서 보복성 학교폭력 신고 건수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행복지수가 꼴등인 나라입니다. 한국가 달리 행복지수 상위권에 위치한 나라들은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입니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북유럽 국가라는 것인데 북유럽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면 자기만 생각하니까 이기주의가 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이기주의는 나만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개인주의는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개인의 철학과 취향을 존중하는 포용성이 개인주의입니다.

  

  유럽은 민간주도 산업화가 이루어진데 반해 한국은 국가주도로 산업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산업화의 속도는 유럽보다 한국이 월등히 빨랐으나 그 과정 속에서 개인보다는 집단과 전체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한국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수의 생각과 반하는 의견을 말하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너는 귀한 사람이야” “너의 생각을 존중해”라는 말을 듣고 자랍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갈등상황이 생기면 대화를 통해 해결하라고 말하지만 문제는 오냐오냐하며 성장한 아이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고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너의 생각을 존중해…”라고 말은 하지만 은연중에 “내 생각은 맞고 네 생각은 틀렸어”라는 이분법적인 갈라 치기 사고를 합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처벌이 약해서 그런 거다”, “처벌 수위를 높여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벌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전과 다르게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라는 외부인사가 사건을 조사합니다. 수사권이 학교 내부에서 외부로 넘어가면서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했다는 비난 등으로 인한 업무 담당자의 스트레스는 경감됐지만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 향상됐느냐에는 의문이 듭니다.

 학교폭력 신고건수는 매년 높아지고 있고 교육청도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화해가 중요성하다고 생각해 일부 교육청에서는 화해중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원할 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화해중재단을 통해 학교폭력 사안이 해결되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내 생각을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브루타 교육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자식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발전시켜 나갑니다.

 

  우리는 상명하복식의 문화가 익숙해서인지 대우받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은연중에 젊은 사람에게 대접받으려 하고, 부모가 말하고 있는데 자녀가 뭐라고 하면 말대꾸한다고 혼냅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미국에서 난리난 나라망신 개망신 진상갑질 한일부녀(feat. 특권의식 의사)>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습니다. 영상 속 남성분은 경찰에게 항의하면서 큰 소리로 "나는 68세입니다", "나는 손님으로서 컴플레인할 권리가 있어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억압된 환경에서 자란 일부 부모님들은 자녀의 생각을 무조건 들어주고 지지해 주며 키우지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일수록 타인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세상에는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식 시험에 익숙해져서 인지 우리는 정답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 향상 등의 이유로 점점 더 논술형 평가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의 논술형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으면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쓴 아이들이 태반이라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고 쓰는 거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이해도 못하고 어설프게 외워서 쓴 답은 점수를 어떻게 줘야 하나 매번 고뇌에 빠집니다.

 ebs 다큐프라임 「한국에서 발견된 특이한 공부 습관?」을 보는데 외국 명문대 학생들에게 "교수와 내 생각이 다르면 누구의 생각을 쓸 것이냐?"라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것이라고 답하지만, 한국은 대부분 교수의 생각을 그대로 쓴다고 답합니다.


  사회는 다원화, 개인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개인주의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부터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그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일을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서로의 생각을 열린 마음에서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집단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서로 자기주장만 하고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럴 때는 인형 하나를 주면서 "이 인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말할 수 있어.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끈지말고 끝까지 들어야 해"라고 주문합니다. 그렇게 1시간, 하루·이틀이 지나면 조금씩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남을 포용하지 못하면 결국에 그 업보는 나에게 부매랑이 되어 날아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나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됩니다.

 좀 더 넒은 마음을 가지고 적당히 상대방의 실수를 알고도 넘어갈 수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의견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용했으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기달려야 합니다. 조금 해보고 "안되네. 내가 뭐라 그랬어"라고 상대를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학생들에게 앞에서 언급한 말을 하면 가장 많이듣는 말이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예요. 왜 저희가 그렇게까지 인내해하고 기다려줘야 하죠?"라고 반박합니다.

 선생님과 학생 간의 관계에서만 인내하고 기다려줘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대 인간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 둘의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좀 더 많이 인내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겠죠….


  개성이 중요시되는 사회입니다. 나다움이 중요하지만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할 수 있어야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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