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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19. 2024

진로 교육

  진로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흔싸귀비”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흔해지면 싸지고 귀해지면 비싸진다는 말입니다.

 요 근래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간호대의 입결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취업이 힘들다 보니 고소득을 보장하는 전문직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입시결과로 표출된 것 같습니다.


  한국이 경제위기를 겪기 전만 해도 공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의대보다 높은 성적이 요구됐습니다. 1980년~90년대 입결 1위는 물리학과였습니다. IMF가 터지고 하루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회사들은 부도처리가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의사와 변호사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유지했는데 그 이유는 전문직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이 일을 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높았고, 매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제한되다 보니 귀한 대접을 받아 높은 몸값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윤석렬 정부에서 의대 증원 이야기가 나온 후로부터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 위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재수학원으로 몰려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2024학년도 9월 모의고사 응시자 수는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갈만한 곳이 없다 보니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부 학과로만 학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일부 지방대나 사립대의 경우 의학계열을 제외하고는 신입생 유치가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뭐든 흔해지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값이 싸집니다. 나를 대체할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나의 가치가 낮아집니다.

 

  과거에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했습니다. 혼자서 농사도 짓고, 옷도 만들고 하루 24시간을 일만 하는데 생산성은 낮았습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만 하게 됩니다. 농사를 잘 짓는 사람들은 본인이 먹고 남을 만큼의 잉여 생산물을 내가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교환했습니다.

 남보다 잘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내가 못하는 일을 그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대신해 줄 것을 요청을 하고 난 그 대가를 돈으로 지불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돈으로 나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


  사법고시가 없어지고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 수가 많아진 후부터 사회적으로 변호사들의 위상이 낮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법정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아니면 변호사를 만날 일이 없어졌는데 요즘은 학교에서도 변호사 분들과 자주 마주칩니다.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의사들이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의사들만 많아진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의사와 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의사와 변호사를 만들어 낼 교사도 필요하고, 그들이 공부할 교재를 만들어 줄 출판사도 필요합니다. 의사와 변호가가 되어야만 많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요즘은 의사도, 변호사도 유튜버를 하고 일반 회사원들도 적극적으로 TV 프로그램에 나가서 자신을 PR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보다 대체 불가능한 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이라는 좁은 곳에서만 수요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넷플릭스와 같이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OTT는 소수의 마니아 층을 위한 콘텐츠에도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하나의 국가에서는 그 콘텐츠를 볼 사람들이 드물다 해도 전 세계로 확대하면 한 나라에 10명씩만 그 콘텐츠를 본다고 해도 꽤 많은 사람들이 해당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니까요.


  어중간한 연예인들보다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일반인들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입니다. 모두가 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다 공부를 잘할 필요도 없습니다. 뭐가 됐던 내가 잘하는 것을 꾸준히 오래 하면 빛을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라디오스타>라는 TV 예능프로그램에 과학 유튜버 궤도가 나와 “저는 물이 들어와서 노를 젓는 게 아니라 물이 없을 때도 계속 노를 젓고 있었고, 물이 들어오니까 이제 앞으로 나가는 겁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빨리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말하고, 남들이 들었을 때 “와”하는 직업을 가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직업이던 상위권에 위치한 사람들은 고액 연봉을 받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직업을 가질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입니다. 단순히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들과 차별화된 능력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판사도 드라마 작가를 하고, 주부도 드라마 작가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친숙함 속에 있는 특별함을 원합니다. 모두가 다 삶을 사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 그 힘듦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극복한 사람들의 스토리에 대중은 열광합니다.


  예전에는 실패하는 게 두려워 성공할 것만 골라서 했습니다. 과제 난이도가 낮은 것을 선택했고 조금이라고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중도포기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실패하는 저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도 도전을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니까요.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불확실한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현재의 정보를 바탕으로 순간순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려나갈 뿐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우리는 성공에 가까워집니다. 진로는 지금 좋아 보이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짧으면서도 길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진로를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하나의 직업을 평생 동안 가지고 갈지도 미지수입니다.

 200년대 이후 꾸준히 입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의사도 미래 AI로 대체될 직업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뽑는 수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해집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예전에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하는 학생 면접 준비를 도와주었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는 경험을 면접에 어떻게 녹아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제 답이 정답은 아니지만 저는 "사회복지학과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방법을 배우는 학과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학교를 다니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라고 말해며 네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습니다.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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