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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22. 2024

종이를 아껴쓰자: 음자리표

  요즘은 종이가 너무 흔하고 싸서 그렇게 "이면지를 활용하자"라고 해도 이면지를 잘 쓰지 않습니다. 꾸깃꾸깃한 종이에 글을 쓰는 것보다는 빳빳하고 깨끗한 종이에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


  지금은 너도나도 종이를 펑펑 쓰지만 예전에는 보관 등의 양피지(양의 가죽)에 악보를 기록했습니다. 양피지로 책 1권을 만들려면 새끼양 수십 마리를 잡아야 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에서는 양피지로 만든 성경책 한 권을 사기 위해서는 전재산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 타임머신이 개발되면 집에 있는 성경책을 가지고 중세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전 때부자가 되어 있겠죠 :)

 당시 양피지는 매우 귀했기 때문에 악보를 필사하는 것은 아무나 없었습니다. 수년간 필사 기술을 갈고닦아야만 겨우 양피지에 먹물을 묻힐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필사를 잘못하는 날에는 손목아지가 날아가는 상황이었죠.




  음자리표는 '어떻게 하면 종이를 적게 쓰면서 음악을 기록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담긴 발명품입니다. 높은 음자리표만 사용하면 저음을 기록하기 위해 덧줄을 많이 그려야 해 공간 낭비가 심하고, 낮은음자리표만 사용하면 고음을 기록하기 위해 덧줄을 많이 그려야 하니 역시 못쓰는 공간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이 둘을 보안한 가온음자리표가 사용되었습니다.


  가온음자리표는 가운데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고음을 많이 사용하는 음악은 1)과 같이 기록하고 저음을 많이 사용하는 음악은 3)과 같이 기록합니다.

가온음자리표


  중세 시대에 성가대에서 노래 부르던 분들은 자꾸 변하는 '도'음의 위치를 누구보다도 빠르고 신속하게 파악해야 했습니다. 이론으로 설명해서 그렇지 오늘날 가수들이 목상태가 좋으면 키를 높이고, 목상태가 낮으면 키를 낮추는 것이랑 똑같습니다. 악보고 기보를 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죠.


  가온'다'란 가운데에 있는 '도' 음을 말합니다. 피아노에 앉으면 열쇠고리가 있는 그곳, 88개의 피아노 건반 중 중간에 해당하는 '도' 음을 가온 '다(도)'라고 합니다.


  요즘은 종이가 너무 싸져서 비올라와 같은 몇 개의 악기를 제외하고는 가온음자리표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야 내 목상태에 따라서 키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게 쉽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싸다구를 날리고 싶은 상황입니다.


  지금은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 이 둘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가온음자리표와 달리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높은음자리표는 밑에서 두 번째 줄에서부터 감아 돌아가면서 그려야 하고, 낮은음자리표는 위에서 두 번째 줄에서부터 감아 돌아가면서 그려야 합니다.

음자리표별 가온'다(도)'




  그럼 여기서 질문!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는 영어로 뭐라고 할까요?

 힌트1. 음자리표는 영어로 Clef라고 합니다.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높은음자리표는 무조건 아래에서 두번째 줄에서부터 감아 돌아가야 되고, 낮은음자리표는 위에서 두 번째 줄어서부터 감아 돌아가야 합니다. 그 감아 돌아가는 부분에 해당하는 음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잘 생각해 보시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답은 높은음자리표를 G Clef, 낮은음자리표를 F Clef라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높은음자리표는 G가 변형되어서 만들어진 것이고, 낮은음자리표는 F가 변형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솔'음의 위치를 알려주는 음자리표라고 해서 높은음자리표는 G Clef, '파'음의 위치를 알려주는 음자리표라고 해서 낮은음자리표는 F Clef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줄에서나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를 그리시면 안 됩니다. 연주자들이 매우 싫어합니다. 가온음자리표가 싫어서 도망 나왔는데 다시 붙들려가는 느낌이랄까요 :)

 번외로 가온음자리표는 '도'음을 알려주는 음자리표이니 영어로는 C Clef라고 합니다.




  만일 종교에 귀의를 할 생각이 있거나 중세 음악을 전공할 생각이 있는 분들은 무조건 가온음자리표가 눈에 익여야 합니다. 예전에 중세 음악을 전공하시는 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 보다 가온음자리표를 보는 게 훨씬 편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고 보면 전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만 거의 쓰 시대에 살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때 전공 수업 시간에 가온음자리표를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음자리표가 계속 바뀌니 너무도 헷갈려 "에라 못하겠다"하고 때려치웠습니다. 역시 전 종이를 펑펑 쓰고 살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



 

높은음자리표 & 낮은음자리표

 높은음자리표를 반대로 해서 낮은음자리표와 마주 보게 하면 하트무늬가 만들어집니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모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같은 사람끼리 만나도 됩니다. 낮은음자리표 2개를 서로 마주 보게 해도 하트가 만들어집니다. 중요한 건 서로가 마주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거니까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낮은음자리표 & 낮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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