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ri 2시간전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솔로몬): 계이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친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나와 상대방 간의 공통점이 있으면 빨리 친해지고, 어디서 본 것 같은 것에 마음이 끌립니다.

 솔로몬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 같아도 어딘가에 그 근원이 되는 흔적이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과 대면으로만 의사소통을 한다면 우리는 사물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영화 <황산벌>에  "거시기 할 때 꼭 거시기 기억하고, 거시기 할 때 잘하라고 일러! 거시기 할 때까지 머시기 하고, 머시기 할 때 거시기 한다"라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관객들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라는 '?'가 뜨지만 영화 속 장병들은 "예"라고 대답합니다.

 여러 사람 특히 공간적,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름이 없으면 내가 생각하는 거시기, 머시기와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거시기, 머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음악(音樂)에서 음(音)을 담당하는 계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계이름은 중세시대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 991~1033)라는 교회 음악가가 성가대 단원들에게 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아 그 음이 그 음이 아닌데… 그 음이 뭔지를 알려줄 방법이 없네'라고 고민에 고심을 하던 귀도는 교회 음악가답게 한 가지 방도를 생각해 냅니다. 그건 바로 성가의 가사를 가지고 계이름을 만드는 것이죠.


  오늘도 열심히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귀도는 <요한성가>의 첫 6구절의 시작음이 '도', '레', '미', '파', '솔', '라'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아! 그래… 음에 해당하는 가사를 계이름으로 쓰면 되겠구나'라고요.

<요한 성가(Ut queant laxis)> 네우마 악보(중세)

  위에 있는 악보는 <요한 성가>를 당시의 기보법인 네우마 기보법을 사용해서 기록한 모습이고 아래에 있는 악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오선을 활용한  모습입니다.

<요한성가> 오선 악보(현대)

  <요한 성가>는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도레미송'에 해당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가정교사 마리아는 처음으로 노래를 배우는 폰 트랩 대령의 7남매 아이들에게 음계를 가르치기 위해 '도레미송'을 알려줍니다. 이 스토리 왠지 귀도의 스토리와 다른 듯 유사한 것 같네요. 엣헴 :)


  <요한 성가>의 가사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하나님, 당신의 종들이 당신이 행하신 일에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도록 그들의 더럽혀진 입술에서 모든 죄악의 더러움을 씻어 주소서.”라는 내용입니다. 절로 "아멘"이라고 답하고 싶어지는 가사입니다.


  여기서 "선생님 '도(do)'가 아니라 'Ut'라고 적혀있는데요?"라고 질문하는 학생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Ut는 라틴어에서 여러 가지 문법적 역할을 하는 접속사로 쓰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뜻하는 Dominus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Si)"라는 명칭은  <요한성가>의 마지막 구절인 Sante Joannes 에서 'S'와 'J' ('J'는 'I' 발음이 난다고 하네요)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계이름과 관련해서 번외로 한 가지 문제를 내보면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음을 내는 건 뭘까요? 안정적이기 때문에 조율의 기준이 됩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면 바이올린 연주자나 오보에 연주자가 내는 그 음을 묻는 것입니다.


  정답은 두구두구 바로 '라'음입니다. '라'는 1939년 국제 런던회의에서 440Hz으로 정해졌습니다. 19세기에는 '라'를 435Hz로도 사용하고 그보다 앞서서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Hz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회의 이후 조율을 할 때 '라'는 440Hz로 맞춥니다.


  사람의 귀는 생각보다 예민하지 않아서 440Hz나 442Hz나 다 비슷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딱히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올린과 같이 고음을 내는 현악기는 깔끔하고 청아한 소리를 내고 싶을 때는 440Hz이 아닌 442Hz으로 '라'음을 맞추기도 합니다. 반면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는 440Hz도 사용합니다.



  학생들에게 음악 이론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선생님 왜 '도(Do)'는 영어로 'A'가 아니라 'C'예요?"입니다.

 앞에서 '라'음이 가장 안정적인 소리를 내고 회의를 통해 440Hz로 정해졌다는 말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래서 나라별 음이름도 '라'음을 기준으로 해서 정해졌는데 우리나라는 '라', '시', '도'를 '가', '나', '다'…라고 하고, 미국은 'A', 'B', 'C' … 이탈리아는 '도(Do)', '레(Re)', '미(Mi)'…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지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유를 찾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귀찮아서 달달 외우기만 했던 것도 그 원리를 이해하고 보면 "아하! 유레카"하는 순간이 옵니다.

 

  신선하고 새로운 것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친숙하고 평범한 것이 주는 일상의 소중함을 소홀히 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역시 익숙한 것이 주는 클래식함은 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평범함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유레카"의 순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이전 02화 종이를 아껴쓰자: 음자리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