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이제 그만

by yuri

「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히가시노 게이고. 알에이치코리아. 2024)의 두 번째 이야기 <피지 않는 나팔꽃>은 결혼할 남자까지 정해주는 어머니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신분 세탁을 감행한 딸과 자살한 딸의 죽음을 믿지 않는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모친을 살해한 아들의 출소 후 근황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전교 1등 아들은 모친으로부터 성적 압박과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고 결국 모친을 살해한 뒤 8개월간 시신과 동거했습니다.

그는 출소 후 자신의 사정을 한 사람에게만 털어놓았고, 그 사람과 가정을 이뤄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도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날 어떻게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까 그 준비를 하면서 살겠다”라고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겉보기에는 공부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괜찮은 것 같은데 심리 검사를 진행하면 유독 불안과 우울증 지수가 높게 나오는 학생이 있습니다. ‘뭐가 문제일까?’하는 생각에 상담을 진행해 보니 집안 곳곳에 CCTV가 있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부모님이 감시한다고 말하더군요….

부모님께 아이의 상태를 말씀드려도 “다 아이를 위한 거다”라는 말만 되돌아왔습니다.


관찰 예능이 대세인지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예능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전지적 참견 시점>, <내 아이의 사생활> 등 타인의 삶을 몰래 관찰하는 예능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관음의 욕구가 있습니다.

SNS의 발달로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엿보는 게 쉬워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남의 사생활 이야기를 쉽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만큼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화제가 연애입니다. 내 아이가 누구랑 사귀고, 내 아이의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합니다.

자녀가 말해주기를 원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이 모임, 저 모임에 참여해서 정보를 얻습니다.


사람 심리라는 게 묘해서 알려고 하면 할수록 별것 아닌 일도 숨기고 싶어 집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적당히 거리가 있어야 좋은 관계가 유지됩니다.

내가 반드시 알려고 하지 않아도 내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어떤 형태로든 내 귀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사생활이 알고 싶다면 최대한 모른척하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 나 고민이 있는데…”하면서 슬며시 다가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반 학생들의 사생활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을 때나, 가만히 있었을 때나 들려오는 정보의 양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때론 모르는 척하고 있을 때 가장 많은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선생님 ○○랑 ◇◇이가 사귄데요. 알고 계셨어요?”라고 물으면 “아 진짜? 대박이다”라고 말하면서 알고도 모른 척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신나서 그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사귄 지는 며칠 됐는지 등을 술술 말합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서 자식 일에 일일이 관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를 한 명에서 두 명 정도만 낳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참견하려고 합니다.

중학교 담임을 하면 의외로 자녀의 학교 생활이나 수행평가 일정 등을 사진으로 찍어서 단톡방에 올려달라고 하시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납니다. 부모 된 입장에서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나 아이가 클수록 부모의 개입은 점점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약대를 다니는 아는 언니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방문에 붙은 팻말이 신기해서 용도를 물어보니 “아무도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할 때 붙이는 거야”라고 답했습니다.


사춘기는 사생활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같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 아이는 자신만의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부모가 모를만한 곳에 자신의 아지트를 만듭니다. 어쩔 때는 학원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다른 곳에 가기도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적당히 풀어주고 적당히 알려고 하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모에게 숨기지 않고 말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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