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목표가 있어야 하나요?

by y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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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친구 한 명이 1년 동안 혼자서 세계일주를 다녀오더니 하는 말이 “대학을 다니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나 자퇴할 거야”였습니다. 당시 저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아서 “자퇴하고 뭐 할 건데? 너희 집 돈 많아?”라고 친구에게 물으니, “여행 다니면서 일하면 되지”라고 답하더군요. 그때는 그 친구를 보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애’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애는 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은 남을 참 많이 의식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명문대에 입학해야 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남들이 “우와”할 수 있는 대기업에 취직해야 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임원으로 승진해야 합니다.


제 초임 발령지는 승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는 학교였습니다.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신규시절이지만 “이런 것도 못해?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 거야”, “요즘 신규들은 기간제를 다 하고 온다던데 그런 것도 안 했어?” 등의 말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주위 선배들이 “승진! 승진!”하며 다니니 당연히 저도 승진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본인 잘못을 저에게 뒤집어 씌우며 승진한 선배 선생님을 보면서 ‘내 오물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승진을 포기했습니다.


승진만 생각하며 달려왔는데 갑자기 목표를 잃으니 뭘 해야 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급하게 이뤄야 할 목표를 찾다 보니 "진로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아직도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로는 교양과목이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어도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몇 년째 음악교사 신분으로 진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진로 수업을 하면서 느낀점은 그래도 아직은 진로 수업보다 음악 수업을 하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뭔가를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목표를 너무 성급하게 잡은 거죠….


나이공식이라고 하죠.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연애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하시던 부모님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후에 나이가 30에 가까워지면 그렇게 “이번에 누구누구 결혼한다더라… 너는 소식 없니? 사귀는 남자(여자)는?”이라고 물으십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결혼 후에는 그렇게 “손주보고 싶다”는 말을 하십니다.


“뭔가 해야 해, 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수능 문제를 시간제한 없이 풀면 정답을 잘 맞히던 사람도 시간제한을 두면 높은 오답률을 보여줍니다.


남들만큼 하면 어떻고, 남들만큼 못하면 어떤가요…. 어차피 잘하나 못하나 내 인생인데 뭘 그렇게 남과 비교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SNS를 보면 ‘남들은 돈도 많고 시간도 많아서 해외여행도 잘 다니고 비싼 명품을 온몸에 칭칭 휘감고 다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괜히 나만 잉여인간 같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은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가 너무 힘드니 때려치우고 다른 곳에 취직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은 궁지로 몰아붙여야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니 사표를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할 수는 없는 걸까요? 왜 극단적으로 한 개를 얻기 위해서는 한 개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입사를 하는 순간 퇴사를 고민하는 것도, 목표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빨리빨리”의 압박감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잡아먹힌다”라고 말합니다. 번외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라는 박명수씨의 명언도 있습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기보다는 그냥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 임용 전 저보다 훨씬 어르신들을 모시고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퇴직자의 세계는 현업에 있을 때 어느 직으로 퇴직했냐로 그 사람의 현재 위치가 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나이에 교장, 교감으로 퇴직했지만 퇴직 당시 직함이 다르기 때문인지 교장 선생님들은 교장 선생님들과 주로 어울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퇴직하면 계급장이 떼어진다고 생각했는데 퇴직자들의 세계에서는 떼어진 계급장이 주는 의미가 생각보다 큰 것 같았습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가합니다. 열심히 고민해 봤자 잠만 설칠 뿐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저는 그 기간 동안에는 뭔가를 열심히 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때운다는 생각으로 유튜브도 보고 이 책 저 책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 학교에 작가 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내 이야기를 써서 종이책으로 출판해 보자는 일념 하나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1권도 기획출판을 하지 못했고, 올반려를 맞은 원고가 몇 개나 되지만 이 또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을 다시 보는데 그 당시는 열심히 퇴고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고, 뭔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뭔가 허전한… 화장실을 갔는데 뒤처리를 안 하고 나온 것 같은 찝찝함이 풍기더군요.


갓생을 사는 것도 좋지만 워라벨을 지키며 적당히 사는 것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이셨던 이어령 교수가 본인의 삶에 대해 “나는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삶이었다. 나에게는 동행자는 없었고, 경쟁자만 있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들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분의 삶의 마지막 회고가 "자신의 삶은 실패했라"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고 삶의 의미가 다릅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합니다.

남을 중심으로 보면 내 인생은 평생 조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중심으로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병입니다」(패드립 브링리. 웅진지식하우스. 2023)라는 책이 있습니다. 요즘은 성공한 사람만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책을 씁니다.

못하면 어떻고 잘하면 어떻나요…. 그냥 이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살면 그 또한 갓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할 일이 생기고 목표가 생깁니다. 목표가 없으면 어떤가요. 지금 이 시간을 잘 버티는 것도 기술입니다.

레슬링 경기에서는 '버티기'만 잘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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