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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Jan 01. 2025

엄마의 지난 온 삶을 찾아 2
 (인터뷰를 통해)

- 엄마의 지난온 삶이 궁금해졌다. 

                * 아래와 같이 엄마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 중에 어떤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올라 


 엄마

 8살인가 그렇게 됐을 거야.
 아버지가 어디 가려면 꼭 내 손을 붙잡고

 아들이 아닌데도 그렇게 데리고 다니더라고.

 나 클 때 흉년이 들어서 그렇게 배를 고프고 자랐거든

 나는 맨날 어렸어도 아버지 논에 쟁기질하러 가면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쑥을 뜯었어

 나도 아버지한테 참 사랑받고 컸어.


엄마 어릴 때 외할아버지한테 사랑 많이 받고 컸구나계속 사랑 많이 받았어?
 

엄마

근데 우리 엄마가 이제 딸만 여섯을 낳아서집 안에서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작은 마누라가 들어와서

바로 밑에 여동생하고 나하고 둘만 놔두고 우리 엄마가 이제 집을 나갔지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부인이 두 명인 거야?


엄마:

아버지도 이제 아들을 낳고 싶었지작은 마누라가 들어와서 한 3년인가 4년 살았어.

그때 옛날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어그 방에서 그 작은 마누라하고 아버지하고 

우리 다 한꺼번에 자는데 여동생하고 나하고 떠들고 야단이니까 쫓겨나서 

그 겨울에 바깥의 길바닥에 나와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지

 

작은 마누라 들어오기 전에는 아버지가 나한테 그렇게 잘했었어

작은 마누라가 집안 물건을 다 가져다 팔아 쓰고는 내가 그랬다고 아버지한테 이르니까 

아버지는 작은 마누라 말만 듣고 그렇게 나를 혼내는 거야  


하루는 아버지가 다리를 걷으라 해서 때리니까 막 피가 터지고 그랬잖아

너무 억울해서 학교도 팽개치고 바로 집 앞에 방을 얻은 엄마한테 그냥 가버렸지


내가 국민학교 때 학교를 거의 안 다녔어. 1학년 때는 잘 다녔지

엄마한테 가면엄마가 앉혀 놓고 막 이것저것 해 먹이고 하다 보니까

에잇 그까짓 학교는 다녀서 뭐 해 2학년 때부터 인가 학교도 안 가고 

그냥 엄마한테 가 버린 거지,  그래서 내가 공부를 제때 못 한 거지 


그때는 그냥 엄마만 그렇게 좋아서그 9살 먹은 철부지 애가 뭐를 알겠냐 인제 와서는,

한글이라도 깨우치고 그랬어야 했는데 왜 그걸 안 했는가

후회해 봐야 뭔 소용이 있어 
 

엄마가 그래서 공부도 제대로 못 했구나!

외할머니가 쫓겨난 것도 그렇지만외할아버지 사랑이 작은 마누라한테

옮겨간 것도 되게 서러웠겠다.


엄마:

서러웠지그렇게 나한테 잘해주던 아버지였는데,

내가 나중에는 아버지한테 정이 떨어져 버렸지너무너무 서러웠지.


그 시절에는 아주 부잣집 말고는 죽도 못 먹을 형편이 되어서 맨날 배를 곯고 그러니까 

내가 14살인가 15살인가 됐는데 그때서부터 이제 입이라도 하나 덜라고 나를 남의 집으로 

식모살이를 보낸 거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엄마를 식모살이로 보냈어

열다섯 살인데?


엄마

그때는 다 그랬어 배를 곯고 먹을 게 없으니까

끼니를 해결하려면 어떡하냐


:

끼니 해결하는 게 힘들었구나

식모살이 갈 때 서울에 아는 집이 있었어?


엄마:

우리 집 뒤에 사는 형식이 엄마라고 있었는데그 집이 좀 부자로 살았어

형식이 엄마가 형식이를 대학을 보내려고 그랬어

서울에 형식이네 작은 집이 있는데 거기로 보낸 거야 

고등학교부터 서울서 학교 다니게 하려고,


형식이 따라서 형식이네 서울 작은 집 가서 살았어

나한테 형식이 밥해 주라고 형식이 엄마가 나 월급까지 다 대줬지

형식이는 그때 고3인가 그랬지.


형식이 서울 작은 집이 장사해서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고 그랬어 

그래서 그 집 살림도 내가 도와주고 그랬지.


:

엄마 열다섯 살에 낯선 서울집 가서 식모살이하는데 안 서러웠어?


엄마:

배 안 곯고 뜨거운 볕에 나가 농사짓는 것보다는 나아서 괜찮았어


:

형식이가 고3이면 엄마랑 나이 차이가 크게 안 났네.
형식이는 공부하러 서울 가는데엄마는 뒤치다꺼리하러 따라가는 게 괜찮았어?


엄마:

그냥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어

식구들 입이라도 하나 덜어야겠다는 그런 마음만 먹었지


나 어릴 때부터 항시내 동생들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나는 이모네 집에서 얻어먹고 왔으니까 나 먹을 것은 동생들 주라고 그랬지 

나는 그때서부터 배를 많이 곯고 동생들을 많이 생각했지 
 

내가 그래도 그 남의 집 식모살이하면서 할아버지 털 잠바 다 사서 보내고

벌어서 시골 엄마한테도 돈 다 보내고 그랬잖아.

 

내가 또 다른 집 식모살이로 옮겨 다니고서너 번인가 옮겨 다니면서 

서울에서 다 벌어서 스물다섯에 시집갔지 

결혼식을 춘천에 무슨 회관인가 하는 곳에서 했어결혼식장도 아니고 ..

그런데 나 결혼식 날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아무도 안 왔다


:

결혼식 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오지 않으셨어

딸 결혼식인데?


엄마: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서울로 오길 했냐누가 왔냐아무도 안 왔다

결혼하고는 위 동서랑 한집에 4년을 같이 살면서 온갖 위 동서 시집살이는 다 당했지 

그 문댕이 같은.

그리고 이제 아버지하고 살면서 느그 아버지가 그렇게 속을 썩였지


큰엄마가 엄마한테 한 시집살이는 유명하잖아엄마한테 틈만 나면 악담 퍼붓고

겨울 얼음물에 빨래시키고집안 궂은일 다 떠맡기고

우리 이모들이 괜히 큰 엄마 라면 학을 떼겠어.

엄마는 제일 예쁠 나이인 스무 살에 가장 좋은 기억은 뭐야?


엄마:

스무 살에 활짝 펴 본 적이 없지 그냥 남의 집 살림한 거밖에 없어 


:

엄마의 스무 살은 활짝 펴본 기억이 없구나마음이 좀 짠하네

그러면 엄마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야?


엄마:

나는 진짜 행복한 것은 그때 8살 때인가 아버지하고 여기저기 다닌 거 

그거 말고는 크게 행복이 없어 그래서 내가 지금도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뭔 이렇게 팔자를 타고났나..그런 생각이 들어가






엄마의 얘기가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어린 시절 아들 못 낳아 쫓겨난 외할머니 이야기,

외할아버지 둘째 마누라 때문에 설움 받은 이야기제때 공부 못해 한 맺힌 이야기

열다섯 살부터 서울 식모살이한 이야기들까지!          



들을 때마다 아 또 저 소리다하고 흘려듣곤 했었다인터뷰를 정리하며 글로 마주하니

너무 다르게 와닿았다열다섯 살 소녀의 엄마가 너무 안쓰럽고짠해서 눈물이 계속 났다          



부모와 여섯 동생에게 보탬이 되려고낯선 서울 땅 식모살이하는 열다섯 살 소녀의 

고달픔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저 고생하며 산 엄마니까내가 이해하고 참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팔순인 엄마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열다섯 살 소녀를 이제야 제대로 만난 것 같다이젠 내가 춥고 배고팠던 열다섯 살의 

소녀를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싶다이 과정을 지금이라도 한 것이 참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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