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삶이 궁금해졌다.
내가 가진 상처와 관련해서 그 당시 엄마의 사정은 어떠했는지 탐색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 엄마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엄마의 삶이 궁금해졌다.
상담사 수련을 할 때 50분 동안의 상담 내용을 녹음해 다시 글로 풀어서 축어록을 작성하는 작업을 하곤
했다. 글로 작성된 축어록을 보면 새삼 놀라울 때가 많다.
“아, 내담자는 이런 말을 계속하고 있었구나. 왜 상담할 때는 몰랐지!”
“내담자의 진짜 마음은 이랬구나!”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곤 했다. 나는 엄마의 인터뷰 내용을 작성한 축어록을 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
참 듣기 싫어하고 있는 내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거짓말을 약간 보태, 20번쯤 들은 뻔한 얘기 들이였다. 나는 궁금하지도, 놀랍지도 않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마지못해 듣는 것이 느껴졌다.
인터뷰할 때는 연애할 때처럼 상대방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와닿았다. 적어도 인터뷰하는 동안만이라도, 진심으로 엄마의 삶을 궁금해했어야 했다.
축어록을 보면서 잘 이해가 안 된 부분은 나중에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속 시끄럽게 그 시절 얘기를 왜 자꾸 묻냐?”
엄마는 약간 짜증을 내셨다. 나는 아차! 싶었다. ‘엄마와 잘 지내고 싶은 바람’ 때문인 것을 미리 강조해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1960년대 시대상을 조사했다. 국민 대부분이 가난하던 시대,
아들 선호 사상이 강한 시대, 서울로 상경하는 시대였다.
특히, 13~18세의 어린 소녀들이 식모가 되어 경제적·인격적으로 착취당하던 시대 (혹은 공장 노동자가
되어), 큰딸이 희생하던 시대였다.
(엄마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 회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