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엄마 딸이야
“다른 집 남자들은 다 여자한테 잘하는데, 너희 아빠만 그래”
엄마와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빠. 돌아가신 아빠는 한이 많은 분 같았다.
머리가 총명했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공부를 제대로 못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만 나왔어도 그늘에서 사무 보는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넋두리를 하곤 하셨다. 시골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던 순박한 아빠였다.
서울 상경 후 시작된 일용직 노동자 일은 아빠에게 너무 가혹해 보였다.
한학 서원에서 사서삼경을 통달한 아빠였다.
일이 없이 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책을 들여다보시고 종이에 한문을 한가득 써놓으시곤 했다.
어린 내 눈에도 멋진 글씨체로 보였다.
아마도 아빠는 그 한을 술이라는 놈으로 달래셨던 것 같다. 저녁에 술이 만취되어 돌아오시면,
눈빛부터가 내가 알던 그 선한 아빠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억눌러 놓았던 세상을 향한 분노를 만만한 가족들에게 마구 풀어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고달픈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곤 했다.
“도대체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왜 그렇게 매일 마시는 거야”
이번에는 엄마의 아빠를 향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마치 죄인처럼 쪼그라든 모습으로 얌전히 앉아계셨다.
이래저래 집안이 조용한 날이 없는 듯했다. 나는 매일 무서운 밤이 찾아오는 게 두려웠다.
특히 아빠가 일한 돈을 받아오는 날에는 집안에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우리 식구들은 그 돈이 무사히 집까지 오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아빠는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다 어디에 쓰고 오시는 걸까’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가족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언제나 불안한 존재였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도 신뢰하지 않았다.
내가 결혼을 한 이후 남편이 말했다.
“나는 장모님이 장인어른한테 좀 심하게 대하시는 것 같아.
장인이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 아빠의 이런 모습이 오랫동안 익숙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빠 때문에 힘들다는 불쌍한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곤 했다.
잦은 사건 사고로 문제를 일으키는 아빠는 우리에게 불안한 존재였다.
“아빠 새해에는 좀 무탈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보통 부모가
자식한테 해주는 얘기인데, 우리는 바뀐 것 같지 않아”
이런 농담을 할 정도였다. 결혼 이후에도 아빠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킬 때면
엄마는 나에게 전화했다.
“너희 아빠는 꼭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
그럴 때마다 나는 모든 일을 제치고 달려가 바로 해결하는 해결사 같은 존재였다.
엄마는 남편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아빠 대신,
나를 남편처럼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아빠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갔다.
그리고 아빠, 엄마, 나 우리의 삼각관계는 더욱 견고해졌다.
2019년도에 아빠는 암 판정을 받으시고, 6개월 정도 암 병동에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투병하는 동안,
“내가 무능해서 자식들 고생을 많이 시킨 게 제일 미안해”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그제야 아빠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매우 아팠다.
삼각관계는 가족 체계 내에서 불안을 완화하고자 형성되는 세 사람 간의 관계다.
삼각관계에서 두 사람이 갈등을 경험하면, 세 번째 사람을 끌어들여 그 갈등을 완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삼각관계는 가족 내에서 자주 발생하며, 부모의 갈등 상황에서 자녀가
그 삼각관계에 끌려 들어가게 되면 다양한 정서적 문제(우울, 무기력)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자아 분화(건강한 독립)가 덜 된 미성숙한 어른이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삼각관계에 자발적으로 걸려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효녀’라고 불렀다.
『엄마가 “다른 집 남자들은 다 여자한테 잘하는데 너희 아빠만 맨날 그래”
라는 말을 많이 했었지. 정말 다른 집 남자들은 다 여자한테 잘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결혼해 보니까 그런 남자가 거의 없더라. 그냥 엄마의 소망이었나 봐 』
♣내 안의 어른아이 성장기록
■무엇보다 삼각관계임을 자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
-엄마는 ‘불쌍한 사람’ 아빠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인 자세 유지하기
■삼각관계에서 벗어나기 – 자아 분화 수준 높이기
자아 분화는 개인이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구분하고, 감정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아 분화 수준이 높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며,
가족 내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직 내 변화에 초점 맞추기 – 나부터 변해야 한다
-과도한 책임감에 따른 죄책감이라는 불안 다루기 (각자 맡은 역할 분리)
“우리는 각자 감당해 내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 비록 엄마와 딸의 관계일지라도”
■엄마와의 과거 경험을 긍정적으로 재구성
- 엄마에게 받았던, 좋았던 경험을 떠올려 나열해 보기
(긍정적인 관점에서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엄마를 긍정적인 상으로 바꾼다)
『엄마는 밤새 아빠의 술주정에 시달리고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우리 삼 남매
도시락을 싸주셨다. 매일 따끈한 새 밥에 새로운 반찬,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이었다.
덕분에 점심시간 마다 친구들한테 내 도시락 반찬이 제일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또 부지런히 일을 나가셨다』
『아빠는 책을 좋아해서 힘든 형편에도 어렵게 책을 사주셨다. 초등학교 시절
백과사전, 창작동화, 전래동화, 위인전 등을 하루 종일 보며 지루하지 않게 보낸 것 같다.
그 덕에 글짓기를 잘해서 초등학교 때 상도 많이 받은 것 같다.
술을 안 드실 때는 재밌는 말도 많이 해주셨다. 아빠의 유머 감각을 내가 물려받은 것 같다』
■엄마에 대한 감정을 긍정적으로 재구성
-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을, 나 자신에게 직접 해주기
(엄마의 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면서 내 감정의 전환을 돕는다.
이는 나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네가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
정말 미안해. 엄마 아빠는 서로를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할 거야.
그동안 힘든 상황에서 참 잘해 냈구나, 이제 엄마 아빠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도 된단다. 엄마는 항상 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