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엄마의 딸이야
“너는 어려서부터 야무져서, 심부름도 잘하고 뭐든지 혼자 다 잘 해냈어”
7살 때 나는 시골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어느 날 큰삼촌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좋은 곳에 놀러 가자고 해서, 너무 신이 나서 따라갔다.
그리고 나는 반년이나 지난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가 아파서 아이 셋을 돌보기 힘드니까, 잠깐 시골 외할머니집에서 사는 거야’ 라고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믿었던 나의 엄마조차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던 기억이 난다.
어둑어둑 저녁이 되어서야 남쪽 끝 시골 외할머니집에 다다랐다.
처음 가본 시골 외할머니 집은 매우 낯설었다. 그 낯선 곳에서 “이제부터 여기서 사는 거야”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낮에는 그냥저냥 지내다, 어둑어둑 밤이 찾아오면 집이 그립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런 어린 손자를 짠하게 여기는 외할머니의 마른 허벅지에 얼굴을 파묻고 밤마다 울었다.
당시 5살 3살 남동생이 있었는데 아마도 제일 큰 내가 보내진 것 같다. 그때 어린 마음에는,
“왜 나만 이곳에 보냈을까. 엄마는 언제 나를 데리러 올까?”
그렇게 기다렸던 것 같다.
외할머니집에 보내기 전까지는 일하러 나간 엄마가 올 때까지 두 남동생을 돌봤다.
2017년도 즘 막내 남동생의 아이를 엄마가 잠깐씩 돌봐 준 일이 있었다.
당시 조카가 7살, 4살이었는데, 엄마에게 물었다.
“올케가 애들 둘만 집에 놓고 일을 간다면 엄마는 어때”
“아니 걔가 미쳤지 7살, 4살 애들만 집에 놓고 일을 나가”
“엄마도 우리 7살, 5살, 3살 때 집에 놓고 일 나갔잖아”
“그건 네가 7살이라도 보통 야무진 게 아니라서 그랬지!”
엄마는 하나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도대체 7살이 야무지면 얼마나 야무졌을까.
그 7살도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 후로도 나는 일하러 나간 엄마 대신 남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어설픈 손으로 밥을 챙겨주고, 저녁에 엄마가 돌아오실 때까지 동생들을 보살폈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엄마의 궂은일을 덜어주는 조력자가 되었다.
과대 기능은 한 가족 구성원이 과도한 책임과 임무를 수행하면서,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의존하게 만드는 패턴이다.
이는 가족 시스템 내의 불균형을 초래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구성원이 역할을 재분배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과대 기능을 하는 맏딸이었다.
어린 시절 마음껏 놀지 못한 ‘어른아이’가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 ‘어른아이’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출현하곤 했다.
남편한테 애처럼 떼를 쓸 때도 있었다. 심지어 내 아이들을 상대로, 애처럼 싸움질할 때도 있었다.
『맏이가 잘 살아야 동생들도 잘 산다, 웬만하면 집안 경조사는 다 참석해라,
부모한테 잘해야 복 받는다. 항상 베풀고 살아라』
이런 엄마의 말들은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똬리 튼 뱀처럼 앉아 있는 것 같다.
『엄마, 나는 언제부터 인가, 좋은 여행을 다녀도, 좋은 옷을 입어도 엄마가 생각났어
‘나 혼자 좋은 것을 누린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어 온전히 즐기지 못했어.
엄마 나, 이제 그만 미안해하고 싶어. 내 인생을 마음껏 누리고 살고 싶어 』
* 별첨 (내 안의 어른아이 성장 기록 )
■나만의 놀이터 만들기 (어린 시절 미충족된 욕구 풀기)
- 맛있는 음식점, 집 앞에 개천, 집 뒷동산 등
공허함, 분노, 짜증, 우울, 무기력 등이 찾아올 때면 나만의 놀이터를 찾아가,
내 안의 ‘어른아이’를 실컷 놀게 한다.
■“때로는 대접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받는 것에도 익숙해지는 연습을 한다.)
우선 내가, 나 자신을 귀하게 대접한다 – 좋은 옷 사입기, 좋은 곳으로 여행하기 등
■엄마와의 과거 경험을 긍정적으로 재구성
- 엄마에게 받았던, 좋았던 경험을 떠올려 나열해 보기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흰색 타이츠에 원피스를 입은 사진이 몇 장 있다.
엄마는 내가 하나뿐인 딸이라며 없는 형편에도 새 옷을 많이 사주려고 애쓰셨다.
철마다 집 근처 시장 아동복 판매대에서 원피스 한 벌씩 얻어 입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동생들 보느라 고생한다’라며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평소 입이 짧아 잘 못 먹는 나에게
맛난 짜장면 한 그릇도 사주셨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는 직접 뜨개질로 바지도 만들어 입히셨다. (아마도 새 옷 사줄 돈이 없으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소풍 가는 날이면 새벽 일찍 일어나서 맛난 김밥을 부지런히 만들어 주고 일을 나가셨다.
■엄마에 대한 감정을 긍정적으로 재구성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을, 내가 직접 해주기
(엄마의 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면서 내 감정의 전환을 돕는다.
이는 나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딸아,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은 부담을 너에게 준 것 같아 미안해.
너의 자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했던 것 같아.
네가 그동안 가족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어.
이제는 너의 인생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길 바란다.
엄마는, 사랑하는 내 딸이 원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래. 정말 고맙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