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흐르기 시작하고
“항시 배를 곯았어.”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다. 어릴 때 밥 한 끼 배불리 먹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요즘따라 귀에 쟁쟁하다. 엄마는 정말 늘 배가 고팠던 사람인가 보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밥을 짓고, 또 지었다. 김치를 담그고, 또 담갔다. 열무, 파, 오이, 고들빼기, 배추, 깍두기…. 한 번에 다섯, 여섯 가지씩, 마치 미션을 깨듯 해치웠다.
나는 그게 사실 좀 싫었다. 몸도 아프다면서 또 담그고, 친척들한테 퍼주고, 그러고는 며칠씩 앓아눕고. “엄마, 제발 좀 적당히 해.”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안쓰러웠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왜 자신을 갈아 넣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그날은 좀 달랐다. “사람들이 내 김치 먹고 환장한다니까.”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아, 이거였구나. 엄마는 김치로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이었구나. 그 수많은 김치가 그냥 노동이 아니었다. 그건 엄마의 방식이었다. 엄마만의 언어였다. 세상을 버티는 기술이자,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도구였다. 예전엔 엄마가 안쓰러웠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왜 저리 고집을 부릴까. 그런데 이제 안다. 그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엄마는 자기 손맛으로 자기 삶을 지켜온 사람이었다.
앞으로는 나도 엄마 김치에 좀 환장해 보려 한다. “엄마 김치가 제일 맛있어.” 그 말 한마디가 엄마한테는 그냥 칭찬이 아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안쓰럽다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엄마, 진짜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