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흐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아나. 환장들을 하고 먹어.” 엄마는 음식 솜씨로 동네에 이름난 사람이었다. 김치며 나물이며, 손만 닿으면 맛이 달라졌다. 그런 엄마는 방배동 큰 부잣집에서 오래 일했다. 아버지는 일용직이라 벌이가 일정치 않았고, 번 돈도 화투판에서 자주 사라졌다. 엄마는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다.
“아이고, 그 집 젊은 사모님이 성질이 지랄 같아. 그래도 다른 집보다 돈을 많이 주니, 너희 공부 다 시킬 동안은 꾹 참고 다녀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매일 아침 김치며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갔다. 그 모습이 늘 안쓰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엄마가 달라졌다. “오늘부터 안 나간다.” 목소리가 단단했다. “아침부터 별일도 아닌 걸로 성질을 부리길래, 들고 있던 행주를 그냥 그 여자 앞에 확 던지고 나왔다. 속이 다 시원하더라.” 엄마의 얼굴엔 묘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던 얼마 후, 부잣집 사모님 친정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딸 성격이 좀 그러니 이해해 달라’는 말이었다. 며칠 뒤엔 그 사모님이 직접 찾아왔다. “우리 아들이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음식도 못하면서 왜 아줌마를 나가게 한거야. 다시 와달라고 해줘.’ 이러더라고요.”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갈 거였으면, 애초에 그러고 나오지도 않았지.”
그 말이 그렇게 단호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전화가 왔지만, 엄마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가 얼마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했는지를. 그동안 참고 참고 또 참았던 건 오로지 자식들 공부 때문이었다. 그 목적이 끝난 순간, 엄마는 자신의 존엄부터 되찾았다.
나는 늘 엄마를 ‘참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엄마는 ‘타이밍을 아는 사람’이었다. 참을 때와 던질 때를 정확히 아는 사람. 행주 하나 휙 던지는 그 장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시원하고, 가장 단단한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