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거리두기
방이 붙어 있는 게 문제였다. 아들은 밤마다 연애하느라 통화가 길어졌고, 딸은 그 소리에 뒤척이다가— 결국 폭발했다.
“좀 조용히 좀 해줄래?”
“내가 무슨 고성방가라도 했냐?”
툭툭, 톡톡. 말이 오가더니 이내 말다툼이 시작됐다. 서로 한마디씩 올릴 때마다 성량도 함께 커졌다. 그러자 남편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외쳤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조용히 좀 못 해?”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내가 나섰다.
“왜 말을 못 하게 해? 표현 좀 하고 살자고.”
그 말이 신호탄이었을까. 아들이 말했다.
“나도… 사실 말하고 싶었어. 근데 아빠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해서, 그냥 입 다물고 있었어.”
나는 멍해졌다. 아들이 말을 못 했다고? 그때 딸이 울먹이며 말했다.
“오빠만 말 못 했어? 나도 못 한 말 많아. 나도 억울한 거 많았어.”
그러고는 나를 향해 돌진하듯 던졌다.
“엄마는 오빠만 먼저 챙겼잖아. 나도 힘들 때 많았다고. 근데 왜 말 못 했는지 알아? 엄마는 이미 너무 힘든 얼굴이었어. 그래서 나까지 힘들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먼저 떠오른 건— 놀라움이었다. ‘이 애들이, 이런 얘기를 이젠 할 수 있구나.’ 드디어 말문이 열린 걸까. 그 순간— 남편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말 많던 오늘, 우리는 처음으로 진심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