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46일 차
지금 하고 있는 100일 글쓰기처럼 꾸역꾸역 매일 글을 썼던 기억이 또 있다. 아들이 육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이다. 지금은 핸드폰을 소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 당시에는 육군 훈련소에 입소한 동안 핸드폰 없이 외부와 한 달 정도 단절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효도 전화라고 훈련병들에게 집에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몇 번 주기도 했다. 훈련병 한 명에게 주어진 통화시간은 3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대신에 외부와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인터넷 편지가 있었다. 육군 훈련소 사이트에 접속하면 훈련병 개인에게 편지를 작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인터넷에 올린 편지는 행정병이 프린트해서 훈련병 본인에게 매일 전달해 주는 방식이었다. 행정병이 편지를 나눠주는 시간에 '내 편지는 없나' 하고 기다릴 아들을 생각하니 안 쓸 수가 없었다. 외부와 단절된 훈련소에서 읽는 편지는 얼마나 큰 위로와 낙이 되겠는가?
입대하던 날 까까머리의 훈련병들은 한 줄로 연병장을 한 바퀴 돌더니 훈련소로 사라졌다. 그 모습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가 한 무리의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부모들은 그 뒷모습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다. 나 또한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리운 마음에 인터넷에 편지를 열심히 써서 올렸다. 어미의 절절한 마음을 가득 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립다는 말도 하루이틀이다. 일주일쯤 지나니 할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매일 오는 행정병 손에 자기 편지가 없으면, 실망할 모습을 생각하니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억지로 편지에 쓸 소재 거리를 쥐어 짜냈다. 아들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추억담 혹은 무용담을 쓰기 시작했다.
보름쯤 되니 그 조차도 더 이상 쓸 얘기가 없었다. "아, 뉴스기사를 써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라도 전해주자" 슬슬 꾀가 나기 시작한다. 뉴스기사를 카피해서 편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너무 성의 없는 것 같아, 끝에 한 줄 정도는 안부인사를 넣어주었다.
어느날 지인들 모임에서 육군 훈련소 인터넷 편지 얘기를 꺼냈다.
"나는 아들 여자 친구가 편지를 써서 그런 어려움이 있는지 몰랐네" 한 엄마가 이야기한다.
'아.. 군대 간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있으면 그런 점이 좋겠구나. 이 녀석은 여자 친구도 없어서ᆢ'
그리고 인터넷 편지를 제일 많이 받은 훈련병은 포상이 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나는 하루에 한통 쓰는 것이 최선인데, 여자 친구들은 하루에도 몇 통을 쓴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쓴단다. 나처럼 숙제하듯 꾸역꾸역 쓰는 것이 아니란다. 젊은 남녀의 한참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모정이 따라가겠는가.
나도 글쓰기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생길 방법을 다시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