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의 오른팔이 되고 싶었던
유 과장의 부인 M이
하루아침에
철천지 원수가 되어 버린 후
사모는 허전함을 느낀 걸까?
나에게 전화하는 횟수가 늘었고
그 전활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호칭도 스리슬쩍 바뀌고 있었다.
항상 내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던 분이
중간중간
'야'를 붙여 부르시네.
달라진 사모의 태도가 부담스러웠지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이 미국 바닥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본사에서도 실세로 통하는
상무님의 부인이니까.
그 부인이 날 가깝게 대한다는 게
든든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니
H가 왜 그리 내 앞에서 나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부작용도 있네?!
사모는
모든 관계가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쉽게 말해서
모두 다들 사이좋게 지내되
너희끼리 친해지진 마.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고 과장 식구들을 초대했던 거지
우리가 호텔에서 지내던 때에
우릴 초대했던 유일한 집이
고과장네였으니
살림이 도착하고 정리가 끝나면
바로 보답하고 싶었기에
초대를 했었던 거였다.
이 일은
사모와의 통화에
이야기 소재가 되었었다.
사모는 얘길 듣더니
고 과장과 L의 연애사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더랬다.
M이 나가떨어지고 나니
그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되새김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M이 어떤 여자인지
확인사살이 되더라.
사모와
지금은 원수가 된 유 과장 부인 M이
한 참 친하게 지낼 때
고 과장 가족이 미국에 도착을 했고
그 둘은
고 과장의 부인 L을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L이 실수를 한 것.
L이
대화를 하는 도중, 도중 보인
호응의 말들이
반 존대 식의 말투였던 것이다.
"어! 맞네!"
"나도 그럴걸"
"아, 그런가...??"
이런 식.
이 걸 놓쳤을 M이 아니다.
자리를 마치고 나오면서
M이 사모에게 물었다고 한다.
"언니(M은 사모를 언니라고 불렀다),
저 여자 어떤 거 같아요?"
"생각보다 평범한데?!"
사모도
L의 백그라운드를 듣고
기대했던 모양이었나 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M은 맞장구를 치며
언니 앞에서 어떻게 반말을 쓸 수가 있냐며
버릇이 없다는 소릴 하면서
날뛰었다고 한다.
그 말을 가만 들으니
사모도 얘가 버릇이 없구나 싶었고
'지 남편이 빽이 있다고 날 물로 보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갑자기 화가 났다고 한다.
와... 저 여우,
까랑까랑, 눈치 백 단의 사모를
쥐락펴락하는 가스라이팅 솜씨가
아주 그냥 수준급이었던 거지.
그러면서
우리와의 식사자리에선
그런 실수 없었냐 묻길래
전혀 없었다 했더니
"내가 불러다 한마디 했거든.
그랬더니 울더라고.
이제 고쳤나 보네.
L은 보면 좀 답답한 구석이 있긴 한데
나쁜 앤 아냐 잘 지내봐"
와...
이거 나보고 어쩌라는 거임?
친하게 지내라는 거냐
아님,
친하게 지내기만 해 보라는 거냐
그 순간
머릿속엔 생각이 많아지고
눈알을 굴리게 되더라는.
어쨌든 잘 만났으니 됐네 라며
통화는 마무리가 되었지만
나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아니,
그걸 또 불러다가
눈물을 쏙 뺐다고...?
생각해 보니
나도 저런 식의 혼잣말을
내뱉은 적이 있었기에
속으로 얼마나 뜨끔했던지.
그 일이 있고 바로 구정이었기에
타국에 사는 사람들끼리
떡국이나 먹자며
세 가족은 상무집에 모였었다고 했다.
L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그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가서 또 두 여자에게 무슨 꼴을 당할지
빤히 알겠으면서도
남편의 직장상사 초대이니
꾸역꾸역 갔겠지.
사모가 그때 이야기를 해 주는데
"아마 그때 엄청 외로웠을 거야"
라고 했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본인과 M이
부엌에 서서 하하 호호거리고 있으니
L이 쭈뼛쭈뼛 들어오더란다.
하지만 그럼 뭐 하나.
사모 옆엔 M이 딱 붙어
맨투맨으로
철벽 수비를 치고 있는데 말이다.
그 둘만 아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기만 하니
L은 그림자처럼 배경이었던 거지.
어쩌면
사모와 L에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더 있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L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더 다이나믹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말이지.
내가
L보다 먼저 미국에 왔었다면
이거 이거 어쩔 뻔했을까 싶어서
혼자
어후! 어후!! 거리며
격하게 도리도리.
그랬으니
나랑 사모랑 M,
셋이 사모집에서 만났을 때도
헤어지고 나서
나를 얼마나 씹었겠어!
다행히
M은 지 꾀에 넘어가서
자폭으로 사라졌고
여우짓도
똑똑해야 할 수 있는 거라는
큰 교훈을 남겼다.
또 하나,
저 멀리 누군가의
천년 묵힌 체증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닐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