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인데 눈이 내렸다
그것도 아주 펑펑.
캐나다 바로 아래에 있는 이곳은
미국 사람들도 고개를 내젓는 state이다.
중북부에 위치한 까닭에
10월부터 4월까지 눈이 내리고
그 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분위기는 좋냐고?
흑인조차 많지 않은 백인 시골마을에
다운타운조차도
한국의 80년대 분위기랄까.
정말
삶을 산다는 표현보다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곳이다.
한국은
벚꽃놀이로 하하 호호하는 4월에,
곧 있음 여름을 맞이할 4월에,
나는 난방을 최고조로 틀고
거실에 앉아
펑펑 내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숨만 푹푹 나왔다.
눈이 오니 나가지도 못하고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 보니
사모에게
전화 한 번 넣을 쯤인가 싶어
통화버튼을 눌렀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받는 사모
"어~ 블레스미!
내가 다시 전화할게"
그러더니
내 대답이 나가기도 전에
끊어버리더라.
나야
뭐
통화 한 번 건너뛰면 좋지 싶어
잘됐다며 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사모다.
받아 든 나에게
시작부터 한숨이 푹푹이다.
"블레스미, 내가 뭐 했는지 알아?"
내가 알리가 있나.
하지만 상냥하게 물으니
방금 집에 유 과장이 다녀갔다고 했다.
유 과장은
사모 뒷담화를 하고 다니다가
들통이 나 한바탕을 벌였던
M의 남편이고
유 과장 본인도
상무의 오른팔이 되고자
그 집의 집사짓을 자처했던 뺀질이.
이건 또 뭔 일이냐 싶어 물으니,
사모가 강아지 배변을 위해
잠시 나갔는데
유 과장이 차에서 삽을 들고 내리더란다.
꼴도 보고 싶지 않아서
못 본 척 들어가려는데
계속 자길 부르면서 뛰어 오더니
다짜고짜
난방에 문제가 없냐고 물었다는.
어이없어 쳐다보기만 했더니
삽을 들고 집 옆면으로 들어가서는
가스관 주변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 내기 시작하더란다.
뭘 하는 거냐 말렸는데
이 것만 하고 가겠다며 끝까지 파더라는.
내가 살던
그곳의 주택들 옆에는
가스관이 붙어 있는데
그 가스관 출구가 막히면
배출이 되지 않아
난방이 멈춰버리게 된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눈이 워낙 많이 오는 지역이라
겨울이 되면
쌓인 눈 때문에
그 가스관 출구가 막혔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데
상무와 사모는 그걸 몰랐던 거고
유 과장은 그걸 알았던 거지.
그래서
그날 그렇게 눈이 내리자
남들 다 회사에 가서 일하는
낮 시간에
삽을 들고 사모네 집으로
냅다
출동을 한 거였고.
참으로 눈물 나는 충성심이네.
사모는 M이 한 짓 때문에
유 과장도 눈 밖에 난지라
말도 섞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차 한잔을 내줬다고 한다.
잠시 안부의 인사가 오가고 나더니
자기 부인 M이 벌인 짓에 대해
사과를 하더란다.
자기도
그렇게 하고 다닌 줄 전혀 몰랐다.
단속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으니
부디
노여움 푸시고 용서해 달라.
그날 이후
본인도 한 소리 했고
M도 반성하고 있으니
제발 한 번만 용서를 해달라.
사모의 마음이 정말로 돌아선 건지,
그런 말 할 거면
듣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 했더니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했다는 유 과장!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도
어쩔 수 없어서 같이 살고 있다면서
내가 이혼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대물림해 주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되느냐
예전처럼
상무님 댁과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다.
전해 주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이건 현실인가 싶으면서
어쩜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도 싶고
역시 뺀질이 다운 연기력이라며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용서하신 거예요?"
"내가 미쳤니~~~
그걸 내가 왜 용서해!"
이혼을 하든 말든
그거야 니 사정인데
왜 내가 그거까지 신경 써서
참아야 하는 거냐고
오히려 대 놓고 따졌다는 사모.
안 그래도
유 과장 한 번 불러다가
여편네 단속 잘하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지가 지발로 찾아왔다며
외간남자가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와서
울고 있는 것도 소문날까 무서우니
빨리 나가라고
삿대질도 추가해 줬다는 사모.
부라보!
와~~~
왜 이렇게 내 속이 시원하지?!
입안에
악취풍기고 아프기만 했던
썩은 이가 쏙 빠진 기분이었다.
까랑까랑한
늙은 백여우 같은 사모의 성격이
여기서 빛이 날 줄이야.
그리고는
상무에게도 전활 걸어
다시는
본인의 집에 얼씬도 하지 않도록
유 과장에게
단단히 말해 놓을 것과
회사에서
일 외엔 접촉하지 말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보는 입장에서
속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아,
눈 밖에 나면
이렇게 확실히 제거가 되는구나 싶어
살 떨리기도 했지.
물론 그 만한 잘 못을 한 거였고
나는
하라고 해도
흉내도 못 낼 소심쟁이라
내가 저리 되진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