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의 왕할머니이자 나의 외할머니는 올해 89세를 맞으셨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는 동네 시장에서 콩나물이나 시금치, 당근이나 감자, 양파, 두부 같은 부식거리들을 파는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댁에 방문할 때면 집보다 먼저 할머니가 일하시는 시장으로 가곤 했었다. 나와 동생이 주변 상인 분들께 인사를 하면 예쁘다며 사탕이며 간식을 손에 쥐어 주시던 기억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를 생각하면 손님이 많으나 적으나 늘 동네 시장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계시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할머니가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상도 잊을 수 없다. 꽃무늬가 있는 동그란 양은 접이식 상을 펴 밥과 반찬을 내어주시던 기억. 할머니는 자주 임연수 구이를 반찬으로 내어 주셨는데 먹기 좋게 뼈를 발라 살점만 올려주시면 나와 동생은 물 말은 밥에 하나씩 얹어 맛있게 잘도 먹었다. 할머니네 집에 갈 때면 이름도 사람 이름처럼 특이한, 담백하고 고소한 임연수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할머니는 종종 손주들의 이름을 헷갈려하셨는데 내 이름을 부를라치면 그전에 다른 손주들의 이름을 세네 명 부른 뒤에야 마지막에 내 이름을 부르곤 하셨다. "철수야, 순이야, 영희야, 아니 수정아!" 이렇게 말이다. 아마도 부르고 싶은 손주의 이름이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아 떠오르는 이름부터 차례로 부르시는 것 같다. 손주가 많아질수록 이런 일은 더 잦아졌는데, 지금은 다섯명의 자녀에게서 얻은 손주가 아홉에 손주의 자식들도 열한 명이나 되니 할머니에게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눈치껏 "저 수정이에요"라고 말하는 게 빠를 정도이다.
내가 엄마의 큰딸이고 엄마를 많이 닮은 것처럼, 엄마도 할머니의 큰딸이고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나는 엄마 말을 잘 안 듣기도 하였는데, 엄마는 줄줄이 딸린 동생들과 고생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걱정에, 부모 속도 안 썩이는 착하고 어른스러운 딸이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는 일찍부터 양장 기술을 배워 일을 했고, 결혼할 생각도 그다지 없었는데 할머니가 권해서 결혼도 했단다. 엄마는 소개로 만난 아빠가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할머니가 아빠를 참 마음에 들어 하셨고 엄마에게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좋겠다"라고 해서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할머니가 사윗감을 잘 보셨던 셈인데, 아빠는 지금도 엄마가 고마워할 정도로 할머니에게 참 잘하신다.
엄마가 나를 위하고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처럼, 할머니도 엄마를 위하고 엄마도 할머니를 생각한다. 재작년에 큰 수술을 하신 이후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신 할머니를 엄마는 늘 걱정하신다. 어릴 때는 할머니댁에 자주 놀러 갔었지만 결혼한 이후로 할머니를 자주 뵙지 못한 나는,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할머니의 안부를 묻곤 하는데 아프신 뒤로는 걷는 것도 많이 불안해지고 연세가 많아지셔서 아무래도 오래는 못 사실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마음이 좋질 않았다.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언젠가 엄마도 지금의 할머니처럼 나이가 많아지고 기력이 약해질 때가 올 텐데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만날 수 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고, 함께 식사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참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엄마가 없다는 건 아직까지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엄마에게도 엄마의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능한 한 더 오래도록 유지되도록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