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여행

by 수정

엄마와 우리 두 자매는 종종 우리 셋만의 여행을 꿈꿨다. 챙겨야 할 남편이나 자식들 없이 -엄마에게는 우리가 자식이지만 다 컸으니 챙겨야 할 대상에서는 제외하고- 오롯이 셋이서만 여행을 가면 너무 재밌고 즐거울 것 같았다. 나와 내 동생은 엄마의 환갑을 기념해 세 모녀 여행을 계획했고 미리 적금을 부어 돈도 모았다.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곳이면 두고 온 아이들과 남편, 집안일과 직장일 등이 신경 쓰여 마음 편히 못 놀 것 같다며 이왕이면 집에서 멀리, 국내보다는 해외로 떠나자고 했다. 그리고 2016년 여름 어느 날 우리는 스위스로 향했다. 계획이 조금 변경되어 플러스알파로 여덟 살짜리 조카도 함께하게 되었지만, 그리고 그 조카가 여행 초반부터 엄청난 변수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여행을 처음으로 간 우리 셋만의 여행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유여행으로 간 것이어서 동생이 여행의 거의 모든 것을 계획했었다.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은 물론이고, 여행에 관련된 카페에 미리 가입해 틈틈이 공부하며 여행루트도 자세하게 짜 두었다. 동생은 우리가 갈 곳의 지도가 포함된 세부일정을 문서로 작업해 공유해 주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혼자서 이것저것 비교하고 알아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 생각하니 미안할 따름이다. 아마도 동생은 예정에 없던 조카를 데려가야 해서 엄마와 나에게 미안한 마음, 그리고 여덟 살 아이도 힘들지 않을 여행이 되어야 했기에 더 자세하고 꼼꼼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약간의 지연이 있었지만 비행기에 잘 탑승했고 비행시간이 10시간이 넘는다는 것에 놀랐지만 여행의 설렘이 더 컸던 우리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조카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보고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좁고 불편한 비행기 안에서 꼼짝없이 열 시간 넘게 앉아있어야 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졸린데도 잠들지 못하는 조카는 짜증에 난리부르스를 떨었고 졸지에 우리 셋은 그 아이 눈치를 보며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제발 빨리 스위스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여행 중에도 조카는 덥고 힘들다며 징징대기, 식당에서 갑자기 잠들어버리기, 집에 가고 싶다고 조르기 등을 몇 번 시전 했지만 그때마다 젤라또로, 컵라면으로, 꼬드기는 말들로 위기를 넘기며 우리는 잊지 못할 7박 9일의 스위스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엄마는 그 낯선 곳에서도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했는데 한 외국인 할머니와 엄마는 한국어로 그분은 프랑스어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나와 동생은 엄마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줄 알았었다.


우리는 종종 길을 헤매기도 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여기가 어디냐고 맞게 가고 있는 거냐고 계속 묻는 엄마에게 동생은 나도 여기 처음 와봤다며 화를 낸 적도 있었지만 구글맵 덕분에 어쨌든 목적지에 다다르긴 했고 또다시 놀라운 풍경에 금세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그때 보았던 아름다운 호수, 들풀 혹은 눈으로 뒤덮인 산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예쁜 마을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그림 같은 풍경들이었다. 아침마다 먹던 크루아상과 오믈렛은 정말 최고였고 납작 복숭아와 젤라또도 너무나 맛있었다.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 모두 여유로워 보이고 미소가 넘쳤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던 일상을 벗어난 짧은 여행이라서 더 그렇게 느꼈겠지만 모든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그 뒤로 외할머니와 큰 이모와 함께 하와이에 다녀오셨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와 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우리와 갈 때는 편했었는데 막상 엄마가 주도해서 다녀오니 할머니와 이모를 챙겨야 해서 조금은 힘들었다는 후기도 들려주셨다. 다음에 우리 셋이서만 또 가자는 말도.


셋만의 여행을 그 뒤로도 자주 꿈꿨지만 각자의 생활과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고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그 사이에도 나와 동생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여행을 기대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올해는 엄마가 칠십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또 슬금슬금 기대에 부풀어 계획을 짠다. 이번 목적지는 스페인으로 정했다. 엄마도 오랜 시간 비행기 타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흔쾌히 찬성하셨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 우선 비행기표만 예매해 두었다. 여러 가지 일들로 파김치같이 지친 날에도 아직 한참이나 남은 비행기 티켓을 꺼내보면 힘이 난다. 우리는 한동안 또 여행계획을 세우느라 조금은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분주함보다 몇 배 더 행복할 것이다. 이번에는 나도 미리 공부 좀 해서 동생과 일을 분담해야겠다. 엄마와의 여행은 언제 어디라도 좋다. 국내 가까운 곳, 짧은 일정이라도 앞으로도 자주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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