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이면 시어머니가 계신 우리 집으로 시누네 가족들이 오기 때문에 나는 명절 전 주말이나 명절 다음 주말에 친정에 다녀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긴 연휴 덕분에 명절 기간에 친정에 다녀왔다.
엄마는 우리가 온다고 들통으로 하나 가득 해물탕을 끓여 놓으셨다. 열흘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더덕무침도 잔뜩 해 놓으셨다. 집에 가져가라고 한통 싸주시기까지 했다. 받아만 먹는 나는 좋지만 껍질 까고 두드리고 요리하느라 힘드셨을 것이다.
"엄마, 다음부터 안 해도 돼. 힘든데 하지 말어." 말은 했지만 아마 다음에도 더덕무침은 또 반찬으로 올라올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방 하나가 줄었다. 첫째 조카(내 동생의 아들, 이하 '진')는 진작부터 엄마네 집에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 밑에 조카(내 동생의 딸, 이하 '정')도 엄마네 집으로 들어왔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할머니네 집에 학교에서 더 가깝다고 자기 집은 놔두고 여기로 이사를 온 것이다. 동생네 부부는 맞벌이를 하니 두 조카가 어릴 때부터 엄마가 대신 돌보아주기는 했지만 굳이 엄마아빠 집 놔두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오다니, 거리도 많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닌데. 돌봐주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은 다르다. 아무래도 엄마가 신경 쓰고 챙겨줘야 할 부분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나는 엄마가 힘들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엄마는 '진'과 '정'을 늦게 얻은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들이 없었던 엄마는 첫 손주인 '진'을 아들 키운다 생각하고 돌봐주신다.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어른만큼 자라 사춘기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엄마에게 '진'은 아들이나 다름없을 것이고, 그 아이에게 우리 엄마는 할머니이면서 또 다른 엄마일 것이다.
그 아래 동생 '정'도 우리 엄마를 잘 따라 할머니가 탁구장에 가거나 커피숍에 갈 때 자주 함께 가서 주위 분들도 막내딸이라고 여기신단다. 엄마는 딸 둘을 낳았지만 아들 하나에 딸 셋을 키우는 셈이다.
동생을 보며 가끔 샘이 나기도 했다. 내 자식이니 내가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남편도 집안일과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혼자서 힘에 부처 울기도 했고 엄마가 가까이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그만둘 수 없는 좋은 직장에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혼자 상상해 본 적도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엄마는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자녀들을 맡긴 동생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동생은 엄마에게 부족함이 없게 잘한다.
엄마는 힘들다 안 하시고 '진'과 '정'에게 부족함은 없을지 항상 생각하신다. 물질적인 부족함이 아니라 마음의 부족함말이다. 내가 보기에 '진'과 '정'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부모의 사랑과 할머니의 사랑까지 두배로 받고 자라는 듯 보인다. 함께 한 시간만큼 쌓인 정과 사랑은 어쩔 수 없다. 우리 아이들도 할머니와 자주 보고 오래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아니 그보다도 지금 내가 '진'과 '정'의 입장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릴 때는 잘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지금 내가 이 마음을 가지고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면 엄마에게 더 잘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이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가 보다.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랑, 내가 엄마에게로 올려 보내주는 사랑보다 더 많이 넘치도록 부어 내려주는 사랑.
"진아, 정아~ 그거 아니?
너희들은 진짜 복 받은 사람이란다.
우리 엄마가 너희 할머니라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