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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

by 수정 Feb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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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나 추석이면 시어머니가 계신 우리 집으로 시누네 가족들이 오기 때문에 나는 명절 전 주말이나 명절 다음 주말에 친정에 다녀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긴 연휴 덕분에 명절 기간에 친정에 다녀왔다.
엄마는 우리가 온다고 들통으로 하나 가득 해물탕을 끓여 놓으셨다. 열흘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더덕무침도 잔뜩 해 놓으셨다. 집에 가져가라고 한통 싸주시기까지 했다. 받아만 먹는 나는 좋지만 껍질 까고 두드리고 요리하느라 힘드셨을 것이다.
"엄마, 다음부터 안 해도 돼. 힘든데 하지 말어." 말은 했지만 아마 다음에도 더덕무침은 또 반찬으로 올라올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방 하나가 줄었다. 첫째 조카(내 동생의 아들, 이하 '진')는 진작부터 엄마네 집에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 밑에 조카(내 동생의 딸, 이하 '정')도 엄마네 집으로 들어왔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할머니네 집에 학교에서 더 가깝다고 자기 집은 놔두고 여기로 이사를 온 것이다. 동생네 부부는 맞벌이를 하니 두 조카가 어릴 때부터 엄마가 대신 돌보아주기는 했지만 굳이 엄마아빠 집 놔두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오다니, 거리도 많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닌데. 돌봐주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은 다르다. 아무래도 엄마가 신경 쓰고 챙겨줘야 할 부분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나는 엄마가 힘들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엄마는 '진'과 '정'을 늦게 얻은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들이 없었던 엄마는 첫 손주인 '진'을 아들 키운다 생각하고 돌봐주신다.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어른만큼 자라 사춘기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엄마에게 '진'아들이나 다름없을 것이고, 그 아이에게 우리 엄마는 할머니이면서 또 다른 엄마일 것이다.
그 아래 동생 '정'우리 엄마를 잘 따라 할머니가 탁구장에 가거나 커피숍에 갈 때 자주 함께 가서 주위 분들도 막내딸이라고 여기신단다. 엄마는 딸 둘을 낳았지만 아들 하나에 딸 셋을 키우는 셈이다.

동생을 보며 가끔 샘이 나기도 했다. 내 자식이니 내가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남편도 집안일과 육아에 적 참여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혼자서 힘에 부처 울기도 했고 엄마 가까이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그만둘 수 없는 좋은 직장에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혼자 상상해 본 적도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엄마는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자녀들을 맡긴 동생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동생은 엄마에게 부족함이 없게 잘한다.

엄마는 힘들다 안 하시고 '진'과 '정'에게 부족함은 없을지 항상 생각하신다. 물질적인 부족함이 아니라 마음의 부족함말이다. 내가 보기에 '진'과 '정'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부모의 사랑과 할머니의 사랑까지 두배로 받고 자라는 듯 보인다. 함께 한 시간만큼 쌓인 정과 사랑은 어쩔 수 없다. 우리 아이들도 할머니와 자주 보고 오래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아니 그보다도 지금 내가 '진'과 '정'의 입장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릴 때는 잘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지금 내가 이 마음을 가지고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면 엄마에게 더 잘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이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가 보다.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랑, 내가 엄마에게로 올려 보내주는 사랑보다 더 많이 넘치도록 부어 내려주는 사랑.

"진아, 정아~ 그거 아니?
너희들은 진짜 복 받은 사람이란다.
우리 엄마가 너희 할머니라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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