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정일을 두 달이나 앞두고 1.7kg의 미숙아로 갑작스럽게 태어났다. 임신 중이던 엄마는 시골에서 밭 일에 뭐에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단다. 몸이 힘들었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엄마는 감히 힘들다는 말도 못 했다고, 지금 같았으면 안 그랬을 텐데 미련하게 고생하다가 조산하게 되었다며 이따금 그때 이야기나 나올 때마다 나에게 미안해하신다. 내 출산을 담당하셨던 의사 선생님은 아이는 아무래도 살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아빠는 엄마가 충격받을 걸 염려하여 한 달 동안이나 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못 오게 했었다고 했다. 얼굴 보면 나중에 혹시라도 잘못되었을 때 잊기가 더 힘들 테니 말이다. 엄마가 통사정하며 나를 보고 싶다고 해서 아빠와 함께 병원에 왔던 날은 내 상태가 가장 안 좋았던 날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단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 인큐베이터 안에서 치료를 받으며 입원해 있으려면 엄청난 병원비가 들었고, 엄마 아빠가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이제 그만 포기하자며 퇴원시키고 시골에 데리고 가자고 하셨는데 아빠가 그래도 내 자식이니 죽든 살든 끝까지 해보겠다며 버티셔서 나는 이렇게 살 수 있었다.
미숙아로 태어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라면서도 자주 아팠다. 철이 바뀔 때마다 감기는 기본으로 달고 살았고 천식에 폐렴에, 걸핏하면 코피도 줄줄 흘리곤 했다. 엄마는 나를 위해 몸에 좋다는 건 뭐든 다 해서 먹이셨다. 덕분에 나는 1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아주 건강해졌고 키도 쑥쑥 컸다. 살도 통통하게 붙어서 시골에 가면 이 애가 어릴 때 얼마 못 살 거라던 그 아이냐며 놀라시는 어르신들의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럼 엄마 아빠는 뿌듯한 표정으로 "네. 그때 포기했으면 어쩔 뻔했어요. 이렇게 건강하게 컸는데..."라고 대답하곤 하셨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마음도 여리고 약했는데 특히 남들에게 거절도 못하고 나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에게도 잘 대처하지 못했다. 그네를 타다가도 다른 아이가 나오라고 하면 말 한마디 못하고 비켜주고 학교에 다닐 때도 못된 아이들이 자기 대신 가방을 들으라면 들어주었다. 나와는 달리 야무지고 똑 부러진 동생은 이런 나를 대신해 그 아이들과 싸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 부모님은 엄마 아빠가 책임질 테니 너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이렇게 주먹을 꽉 쥐고 때리라며 시범까지 보여주실 정도였다.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오죽하면,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하셨으면 그랬을까 싶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얼마나 부모님의 애간장이 탔을지 짐작이 된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에게 주먹 한 번 뻗지 못했고 대부분 약자로 남들에게 휘둘리며 살았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내가 엄마는 항상 불안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기특했을 것이다. 내가 욕심도 좀 있고 영악한 면이라도 있었으면 엄마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였을 텐데. 살다 보니 나도 점점 단단해지고, 약아져서 내가 힘들지 않고 남들에게도 피해되지 않는 적절한 선을 지키며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마흔쯤 되어서야 어릴 적 나를 돌아보며 내가 참 멍청하게 살았구나, 무조건 착한 게 착한 게 아니라 바보 같은 거였구나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살아온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모님은 항상 남들에게 피해 주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게 옳은 것이라고 가르치셨고 또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나도 그렇게 보고 배웠던 것뿐이다.
엄마는 가끔 너 같은 딸은 열이라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상대적으로 사춘기가 심하게 왔던 동생에 비해 나는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자라기는 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내가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여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그 조그맣던 아이가 어느새 건강하게 훌쩍 자라서 결혼하고 자식 낳아 잘 사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그간의 나 때문에 마음 졸이던 순간들과 속상했던 모든 기억들이 싹 사라졌을 것이다.
엄마는 다른 게 효도가 아니라 나와 남편이 사이좋게, 별 탈 없이 잘 사는 게 효도라고 항상 이야기하신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에게 비싼 옷도 명품가방도 사드린 적이 없지만 엄마 말대로라면 나도 효녀이겠거니 혼자 생각한다. 그저 제철에 나오는 고구마나 단호박 살 때 엄마네 집에도 택배로 부치거나, 써보고 좋았던 주방용품이 있으면 엄마 것도 하나 더 사드리는 정도밖에 못하지만 말이다. 엄마는 너도 힘든데 뭘 보내냐며 그것도 마다하시지만 멀리 시집와 사는 나의 작은 마음의 표현이다. 자주 만나서 얼굴 보며 이야기는 못하지만 나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동안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나는 엄마에게 튼튼하고 다정한 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