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수단으로 전락한 노사갈등, 흔들리는 노동조합

2023년 4월 18일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한 우리의 일주일

by 기록하는노동자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2023년 4월 18일, 유진기업 노동조합의 권리수호운동이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났습니다.
회사의 노동조합 흔들기는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고,
4월 14일(금), 4월 17일(월) 집단 연차를 통해 일부 공장이 멈춰선 시기이기도 합니다.
시멘트 수급난으로 인한 업무스트레스는 커져갔고,
회사는 ‘대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진정성 있는 교섭은 없었습니다.


일주일째, 우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1단계 준법운동.
너무도 힘든 시기에 봄나들이 한 번 가지 못하는 동지들을 위해
집단 연차를 사용하는 2단계 봄나들이.

4월 14일에는 70%가 넘는 연차사용률을 기록했지만,
4월 17일에는 그 수치가 꽤 흔들렸다.
조합원 전원의 합의로 시작된 권리수호운동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회사의 빠른 반응, 그러나 방향은 틀렸다

회사는 예상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입장을 내며 노동조합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공장장 체제로의 조직개편을 예고하며, 고참 조합원들을 하나둘씩 흔들기 시작했다.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팀장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도 있었고,

“다른 공장은 안 하는데 왜 너희만 하냐”는 식의 의심 유도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연차 사용하는 날,

조합원 집 앞까지 찾아와 설득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회사의 전략은 1을 100으로 부풀린 왜곡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말들은 조합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갈등을 출세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

입으로는 “응원한다”,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번 사태를 자신의 출세 발판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조합을 가장 세게 흔들고 있다.

권리수호운동이 시작되면서 특정부서, 특정지역에서 탈퇴자가 20여 명을 넘어섰다.

노조에 우호적인 회사 간부님들조차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했는데도,
운동장 밖으로 우리를 내몰아야만 성이 풀리는 것일까?


그러나 회사는 모른다

회사는 모른다.
그들이 노조를 악한 단체로 몰기 위해 내놓은 메시지들이
오히려 대다수 동지들을 단련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현상만 탓하는 자들은 결국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다.

일부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조합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남은 동지들의 단결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바뀐 것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노동조합이 생긴 뒤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공장 내 막말은 줄었고, 임금피크제 적용도 일부 사라졌다.
2022년 연차수당은 100% 지급되었다.

우리는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창구를 갖게 되었고,
회사는 더는 임의로 취업규칙을 바꿀 수 없다.
노사협의회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회사는 이제 노사협의회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최근 회사는 다시 공장장 체제로 회귀해 통제력을 강화하려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누구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내일 교섭, 마지막 믿음을 걸며

내일은 교섭 날이다.
회사는 과연 어떤 입장을 들고 나올까?
변화를 인정할까, 아니면 또 부정할까?

아무 일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우리는, 마지막 믿음을 걸어본다.
회사가 진짜 변할 수 있기를.
우리 노동조합과 함께 상생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오늘도 우리는 잘 이겨냈고, 잘 버텨냈다.

내일은, 분명 더 좋은 우리의 날이 올 것이다.


KakaoTalk_20250608_014001437.jpg 당시 공장에 게시된 회사의 입장문 - 회사는 이처럼 연차사용을 전면파업처럼 표현하며, 조직적인 불법행위로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합원들은 '정당한 연차 사용'을 했을뿐입니다.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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