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8일 위원장 일지 - 중노위 심판결과 공지를 쓰던 밤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2023년 5월 26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유진기업 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해 심판결과를 봉인한 채 양측에 2주간의 화해 기간을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회사와의 화해를 시도했으나, 6월 7일 최종 결렬되었고, 같은 날 심판결과가 통보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이튿날인 6월 8일, 조합원들에게 공지를 보낸 뒤 남긴 회상과 기록의 일기입니다.
판정 결과, 초심 그대로
중앙노동위원회 심판결과를 받은 건 어제, 6월 7일.
회사와의 화해는 끝내 무산됐고, 봉인됐던 판정서가 공식 통보됐다.
결론은 초심 유지.
우리가 제출했던 위장법인 문제, 반복된 교섭 회피, 사용자성에 대한 주장은 모두 기각.
인정된 건 단 두 가지—언론활동 방해와 조합원 파악 시도의 지배·개입.
그마저도 초심에서 이미 인정됐던 내용이었다.
이 싸움, 이겼다고 말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겨우 존재를 확인받았을 뿐이다.
신속한 구제? 느리고 불완전한 심판
노동위원회의 목적은 ‘신속한 구제’라고 하지만,
현실은 ‘느리고 불완전한 심판’에 가깝다.
결과가 나오자마자 회사는 “행정소송으로 가겠다”고 예고했다.
노동자는 또다시 "노동위원회 → 행정법원 → 고등법원 → 대법원"으로 이어지는
끝도 없는 절차에 발이 묶인다.
그 사이 회사는 아무 일도 없다. 벌도 없고, 제재도 없다.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돼도 사과 한 마디 없는 구조.
“이견이 있다”며 이행을 거부해도, “행정소송 중”이라는 말이면 모든 게 유예된다.
지노위에 이어 중노위까지, 모든 입증은 노동자 몫이었다.
하나의 문건에 매달려야 하는 구조
회사는 노동위원회에 하나의 문건이 제출됐다는 이유로
해당 권역장과 관리총괄부장을 직위해제했다.
동시에 유출자를 색출하겠다며 내부조사를 시작했고,
제보자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조 탈퇴 유도’라는 문구가 적힌 그 문건 하나 없었다면,
우리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한 장에 매달려야만 했던 현실. 그게 지금 노동위원회의 구조다.
형사처벌은 노동자 몫, 면책은 사용자 몫
노동조합은 법을 어기면 바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파업 시기나 방식이 조금만 빗나가도 업무방해죄, 손해배상이 따라온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을 거부해도, 부당하게 불이익을 줘도 “입증 부족”이라는 말 한 줄이면 끝이다.
이게 우리가 말해온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노조법 2·3조가 있었다면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국회에 발의돼 논의 중이다.
만약 그 법이 조금만 더 일찍 통과됐더라면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당했던 일에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질적 사용자 책임을 묻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조차 수년째 국회 문턱에 묶여 있다.
판정이 던진 질문,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회사는 재산권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노동3권을 이야기한다.
헌법은 둘 다 보장한다고 하지만, 현실의 법과 제도는
사용자 편에만 서 있다는 걸, 이번 판정이 증명했다.
그래서 묻게 된다.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회사는 왜 노동위원회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이 법은 사용자에게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죽어도 실형을 선고받는 사업주는 드물다.
하지만 회사에 조금의 손해라도 끼치면 노동자는 실형을 받을 수 있다.
이게 대한민국 노동법 현실이다.
억울하지만, 기록은 멈추지 않는다
조합원들에게 이 결과를 알리는 글을 쓰며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우리는 정말 이길 수 있다고 믿었는데,
현실은 눈가리고 아웅이 아니라 아예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수준이었다.
앞으로 있을 법정 싸움에선 또 얼마나 더 지치고 상처받을까.
갈 길이 너무 멀어 오늘 하루는 그저 깊은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이 억울함을 그냥 넘길 순 없다.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기록이 다른 누군가의 싸움에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이 싸움에 함께해준 고마운 이름들
그리고, 이 긴 싸움 속에서 노동조합의 억울함을 끝까지 밝혀내기 위해 함께 싸워준 사람들이 있다.
센트럴노무법인 강호진 노무사님과 윤가영 노무사님.
수많은 이유서와 답변서를 정리해 주고, 노동자의 언어를 법의 언어로 바꾸어 준 두 분.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벽처럼 높은 싸움을 했을 것이다.
부당노동행위를 일부라도 인정받았다는 사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번 과정을 통해 절실히 알게 됐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끝까지 노동자의 편에 서준 그 마음, 절대 잊지 않겠다.
다시, 권리수호의 이름으로
지치는 건 오늘 이 순간까지만.
다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한 발 한 발 전진한다.
돌아가더라도, 흔들리더라도 끝까지 버티며 걸어가겠다.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